"고서에는 조상의 삶의 지혜와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대학에서 고서를 연구하는 분들에게 학문적 자료로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고 싶어요."
대구 봉산동에서 30년 넘게 고서방을 운영하는 박민철(59'금요고서방 대표) 씨가 발로 뛰면서 평생 애지중지 모아온 희귀고서 3천 권을 경북대학교에 무상으로 기증했다. 박 씨는 작년 9월과 12월 고서 1천852권에 이어 이달 8일 1천170권의 고서를 추가로 경북대에 기증했던 것. 기증품에는 임진왜란을 거치고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견뎌온 희귀자료가 대부분이다. 15세기에 간행된 희귀 금속활자인 을해자본 대광익회옥편과 을유자본 문한유선대성을 비롯해 팔만대장경판으로 찍어낸 17세기본인 비유경, 1547년에 간행된 양촌 권근 선생의 저술서 입학도설, 임진왜란 때 적장으로 와서 귀화해 일명 우록 김씨의 시조가 된 김충선의 실기 등이 포함돼 있다. 기증 고서는 모두 한지 재질에 5침선장본으로 대부분 원본이고 필사본은 300여 권에 불과하다.
박 씨가 기증한 고서품은 경북대 중앙도서관 6층 한적실에 '금요 박민철 기증실'이란 명패와 함께 20여㎡ 서재가 마련돼 영구히 보존된다. 이곳 한적실 기증자 중에선 박 씨가 고서 분량으론 가장 많이 기증했다.
"21세기가 문화의 시대임을 부인할 수 없어요. 그런 문화를 활짝 꽃피울 수 있는 귀중한 문화 원천이 고서 속에 집중돼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자료들이 당장에는 활용되지 않더라도 언젠가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훌륭한 문화 원천이 될 것임에 확신합니다."
박 씨는 이달 말 경북대 개교 67주년 기념식에서 고서 기증에 따른 감사패를 받을 예정이다. 그는 지역 대학 중에 경북대가 고서연구를 가장 활발하게 하면서도 국립대 여건상 고서구입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자신의 고서를 기증하게 됐다는 것.
"우리나라 고서는 인쇄기술과 우수재질의 종이를 사용한 문화우등품입니다.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죠. 후손들이 열과 성을 다해 우리 문화재를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밖에도 그는 다른 기관에도 고서를 무상으로 기증하기도 했다. 독립기념관에는 애국지사 허위 선생의 유묵과 경상도 독립운동가 자료를 기증했고 한국학중앙연구원과 계명대에도 고문서 다수를 기증했다.
박 대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고서경매장을 개장해 고서의 투명한 거래를 열었다. 올해 초까지 (사)한국고서협회 회장을 재임하면서 협회의 고서고문 분야 감정기관으로 인정받는 성과를 남겼다. 그는 앞으로도 고서방을 운영하면서 사회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고 기부 활성화를 위해 공공성을 띠는 기관에 고서를 계속 무상으로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역사유물에 대한 대구시의 무관심한 행정이 아쉬워요. 올해 전국 국가기관, 관공서, 박물관의 유물 구입에 대구만 유일하게 빠져 있어요. 우리 지역의 소중한 유물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대구시도 다른 지역처럼 역사박물관을 건립해 지역유물을 모아 영구히 보존하면서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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