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동락] 털과의 전쟁

입력 2013-05-09 14:01:44

지난 주말 날씨가 좋아 겨우내 벼르고만 있던 체셔의 목욕을 시켰다. 체셔는 물이 몸에 닿기만 해도 즉시 몸을 부르르 떨며 털어낼 정도로 물을 싫어한다.

이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체셔는 울어댔지만 오랜만의 전신목욕이니만큼 약해진 내 마음을 다잡고 딥클렌징으로 묵은 때를 벗겨준 후 샴푸로 헹궈내는 두 단계에 걸친 목욕 거사를 치렀다. 여기서 체셔의 목욕이 끝난 것은 아니다. 말리기도 말려야 하지만 털이 마르면서 또다시 엉키지 않도록 빗질을 해줘야 한다.

싫어하는 목욕으로 가뜩이나 날카로워져 있는 체셔이기에 이때만큼은 가벼운 빗질에도 굉장히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이렇게 어르고 달래가며 한 차례 목욕을 하고 나면 나도, 체셔도 몹시 지치지만 털이 다 마른 후의 자태를 보면 '이 맛에 목욕을 시키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역시 이날도 아니나 다를까 그동안 푸석푸석했던 크림색 털이 보송보송하고 복슬복슬한 본연의 자태를 드러냈다.

이렇게 보기만 해도 복슬복슬하고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고양이의 털, 나의 로망은 줄곧 털이 긴 고양이었고 그에 걸맞게 체셔는 고양이 중에서도 길고 풍성한 털을 자랑하는 페르시안이다. 그리고 내 취향을 증명하듯이 두 번째로 우리 집에 온 앨리샤 역시 긴 털을 가진 고양이다. 두 고양이의 몸을 감싸고 있는 넘실거리는 털은 지금도 너무나도 예쁘지만 온 집안에 날릴 털이라고 생각하면 얘기가 다르다.

그토록 내가 좋아하던 고양이의 털은 7년을 함께 지낸 지금에 와서는 아이로니컬하게도 내게 애증의 대상이 되었다. 하루에도 수없이 빠지는 털은 목욕을 시키면 조금 정리되긴 하지만 자칫 빗질을 방심하고 관리를 해 주지 않으면 여기저기 뭉치는 일도 다반사다. 털이 잘 붙는 옷들을 보관하는 옷장 쪽은 고양이 절대금지 구역이지만 짙은 색 옷을 입으려고 꺼내보면 신경 써서 보관했다는 점이 무색할 정도로 크림색과 아이보리색 털이 여기저기에 붙어 있다.

한때는 털 미용을 맡겼다. 미용을 하고 나면 체셔의 털은 꼬리 끝과 발목에만 남았고 아무래도 무겁던 털이 사라져서 그런지 느릿느릿한 녀석이 훨씬 발랄하고 운동량이 많아지곤 했다. 이렇게 털이 짧고 활달한 체셔에 익숙해질 즈음 미용을 하기 위해 찾아간 동물병원에서 잦은 마취로 인해 간이 조금 약해졌고 마취를 깨는 게 느려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람이나 강아지와 달리 신체구조가 매우 유연한 고양이이기에 미용 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동반되던 마취였다. 하지만 체셔의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미용을 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그 이후 집에서 잘 뭉치고 지저분해지는 엉덩이나 뒷다리 쪽 털을 가끔 반려동물용 미용가위로 잘라주는 것으로 대체하고 더 이상 미용을 위한 마취는 시키지 않는다.

"고양이 털 감당하기 힘들지?"라는 주위의 질문에 "우리 체셔 털은 먼지 색이랑 같아서 옷에 붙어 있어도 먼지 같아 보이지 고양이털로 보이진 않아"라며 우스갯소리로 답하곤 하지만 결국 깔끔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내가 고양이털에서 탈출할 방법은 부지런해지는 수밖에 없다. 매일 돌아다니는 털을 치우고 청소하고 옷에서 떼어 내고 하는 것은 어쩌면 총이나 농성은 없지만 일종의 전쟁이라면 전쟁이다.

가끔 집이 아닌 다른 장소에 머물면 털이 없기에 깨끗함과 해방감을 느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집 털 뭉치들이 그리워진다. 이렇게 털이 주는 귀찮음과 번거로움보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에서 내가 얻게 되는 행복감이 더 크기에 오늘도 털을 치우고 떼어내는 나의 일상은 반복된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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