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스승과 멘토

입력 2013-05-06 07:22:32

요즘 사회에서 새롭게 등장한 말 중에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말 중 하나가 '멘토'라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그냥 상담이 아니라 '멘토 상담'을 하라고 하고, 유력 정치인들에게는 조언을 해 주는 '멘토단'이 있다. 청년들에게 꿈을 가지라는 내용의 강연을 하는 '청년 멘토'도 있고,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심사자가 참가자들을 직접 가르쳐 주는 '멘토 시스템'을 채택하기도 한다. 멘토라는 말이 '성장을 도와주는 조언자' 정도의 의미로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멘토라는 말은 원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멘토르'에서 온 것이다. 호메로스의 에서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게 된 오디세우스는 연장자인 멘토르에게 집안일과 아들 텔레마코스의 교육을 부탁하였고, 멘토르는 이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오디세우스의 수호신 아테나는 멘토르의 모습으로 텔레마코스에게 나타나 조언하였다고 한다. 여기에 따르면 멘토는 현명한 스승 혹은 대부(代父)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옛날 동양의 성인들은 자기 자식을 직접 가르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식의 교육을 친구에게 맡겼고, 가톨릭에서는 자신보다 높은 인격을 가진 사람에게 자식을 양자로 보내 배우도록 하였는데, 이런 것들이 멘토의 의미에 가장 적합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강연 한 번 하고 가는 것에도, 인생의 지침이 될 만한 인격을 가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에게 그럴듯한 말을 해 주는 사람에게도 이 말을 쓸 정도로 멘토라는 말이 무분별하게 쓰이는 경향이 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조언자' '삶길잡이' 등의 순화어를 제안하였고, 인터넷 투표를 통해 '인생길잡이'라는 순화어를 정해 발표하였다. 그렇지만 이 말이 잘 쓰이지 않고 있는 것은 일단 단어의 길이가 길고, '멘토-멘티'와 같은 조언자와 도움을 받는 사람 간의 밀접한 관계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의 짝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조언을 해 주는 '멘토'와 도움을 받는 '멘티'는 굳이 다른 말을 만들 필요가 없이 그 말에 가장 적합한 말인 '스승'과 '제자'를 사용하면 된다.

하지만 멘토라는 말 대신 스승이라는 말로 바꾸어 쓰는 것도 잘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스승이라는 말이 "예전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고 하였거늘…"과 같은 곳에 주로 사용되면서 느낌이 너무 무겁고 존경은 해도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까이에서 따뜻하게 조언해 주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적다. 실제 학교에서 교사들은 그림자를 밟히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제자들과 따뜻하게 소통하는 사람을 추구한다. 그러한 변화에 스승이라는 말을 적극적으로 쓰지 않고, 옛날에 집착하다 보니 스승이라는 말은 멘토에 밀려 점점 사라져가는 말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능인고 교사 chamtc@naver.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