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중수부 폐지는 개혁의 시작이다

입력 2013-04-30 07:58:48

내세울 게 변변찮지만 '튼튼한 이'는 늘 자랑거리였다. 가지런하니 적당히 보기 좋고, 상한 데도 별로 없는 것이 '이 때문에 평생 먹는 즐거움을 놓칠 일은 없을 것'이라며 뿌듯해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음식을 씹을 때 시린 느낌이 들었고, 급기야 치과에서 '어금니에 금이 갔다'는 진단을 받게 됐다. 이유는 다름 아닌 퇴'행'성.

'아니, 40대 초반에 노화라니!' 충격을 받았지만 이어지는 의사 선생님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가 들면서 잇몸에 문제가 생기는 사람도 있고, 이에 문제가 생기는 사람도 있는데, 잇몸도 이도 다 좋은 사람 중에 치아에 금이 가는 경우가 적잖다는 것이다.

문득 '터질 것은 어디서 터지든 터질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일지는 몰라도 속으론 이미 상당한 문제가 진행 중일 수 있고, 결국 터지게 된다는 소박한 깨달음이다. 한 곳을 누르면 다른 곳이 튀어나오고, 이곳저곳을 다 누르면 결국 터져버리는 풍선처럼 말이다.

23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81년 4월 '중수부' 현판을 단 지 꼭 32년 만의 쓸쓸한 퇴장이다. 대검 중수부는 검찰의 상징, 심장과도 같은 존재였다. 검찰총장의 명을 받아 직접 수사하는 직할부대로 대형비리 사건을 도맡았다. 비리에 연루된 정치권, 대기업 등에겐 저승사자와 같았다.

그러나 끊임없이 정치적 중립성, 표적 수사 등 불신을 낳으며 공정성 시비에 휘말렸고, '정치검찰' '권력의 시녀' 등의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사건 및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존폐의 중대 고비를 맞게 됐다. 이후 검찰 안팎에서 중수부 폐지 여론이 본격화됐고, 대선 과정에서의 중수부 폐지 공약에 이어 채동욱 검찰총장이 이를 공식화하면서 폐지가 확정됐다. 중수부의 잘잘못, 존폐 찬반을 떠나 끊임없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결국은 터져 버린 것이다.

2012년은 검찰에게 악몽 같은 해였다. 뇌물, 성추문에 이어 브로커 검사까지 검사 비리 및 비위 사건이 봇물 터지듯 잇따르면서 검찰의 위상이 끝없이 추락했다. 이들 사건에다 중수부 존폐 갈등 등으로 검찰 사상 초유의 '검란 사태'로까지 번지면서 검찰총장이 물러나는 내홍까지 겪었다. 올 들어서도 좋지 못한 구설에 휘말려 법무부 차관 내정자가 사퇴하는 악재가 이어졌다.

그러나 채동욱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여야 국회의원들로부터 칭찬 릴레이를 받으며 총장에 임명된 뒤 조직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검찰 개혁 작업에도 속도가 붙었다. 지난달 채 검찰총장이 취임하면서 3개월간의 총장 공백 사태가 일단락됐고, 10일 검사장급 이상 검찰 고위 간부 인사에 이어 이달 23일 고검 검사급 검사들이 인사 후 새 근무지로 첫 출근하면서 4개월 동안 끌어오던 검찰 인사가 모두 매조지됐다.

이 과정에서 대구를 비롯한 부산, 대전, 광주 등 4곳의 지검 1차장 자리가 검사장급 보직에서 제외되는 등 차관급인 검사장 수가 줄었고, 검찰 개혁의 핵심이던 중수부마저 폐지됐다.

검찰이 변화할 수 있는 적기는 바로 지금이다. 짧은 시간 동안 각종 악재가 잇따라 터지면서 오히려 변화의 강한 자극제가 됐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 얼마나 많은 홍역을 앓게 될지, 또 언제 개혁의 기회를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다.

중수부 폐지는 검찰 개혁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검찰의 '자존심'을 도려내며 잡은 이번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적당히 땜질하고 봉합한다고 터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언제, 어디가 됐든 터지기 마련이다. 지금까지의 좋지 못한 인상을 벗고 국민의 친구, 지킴이로 이미지를 변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변화된 검찰, 새로운 검찰이 기대된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