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에 영감 준 시인 하페즈 영묘 방문객 줄이어
봄의 과수원으로 오세요/ 빛과 와인, 석류꽃 향기가 가득하네요/ 당신께서 오시지 않는다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요/ 그리고… 당신께서 오신다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요.(이란의 시인 루미의 작품 중에서)
유명한 학자와 시인을 많이 배출하여 학문의 도시라는 칭송을 받는 시라즈는 시인과 포도주, 꽃을 3대 명물로 꼽는다. 그러나 오늘날은 율법에 묶여 술을 찾아볼 수 없다. 여행 기간 중 식욕을 돋우기 위한 반주조차도 마시지 못한다. 과거에는 문학과 예술 발전에 지역의 명물 포도주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시라즈가 낳은 위대한 시인 하페즈도 포도주를 칭송한 사람이었다. 그는 시를 통해 술이란 어둠을 밝히는 빛, 신의 이슬, 불타는 루비라고 표현했었다.
시라즈 인근에는 하페즈의 영묘가 있다. 이란 사람들은 역사도시 시라즈에 왔을 때 왕릉이나 사원, 박물관이 아니라 위대한 시인이 잠들어 있는 영묘를 먼저 들른다. 방문객들은 대개가 시집을 지참하고 있다. 참배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그 공간을 찾는다. 그들은 묘지나 시비 부근에서 마음속으로 시인과 만나 대화하거나 시집을 읽는다. 그렇게 해서 삶의 찌들림을 풀고 좋은 미래를 기원한다. 특히 아기를 안고 온 여성들이 눈에 띈다. 이란에서는 성인 숭배의 관습에 따라 유명한 성묘를 방문하면 자신들의 기원이 성취된다는 믿음이 있다. 아기를 데리고 가면 온순하고 건강한 아이로 성장한다고 해서 8, 9세가 될 때까지 매년 최소한 한 번은 데리고 방문한다고 한다. 시인 하페즈도 성인의 반열에 오르진 않았으나 그의 영묘에는 밤낮 연중 끊이지 않고 사람들이 찾아든다. 그의 시는 지금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데 누구라도 그의 시 서너 편을 낭송할 수 있다고 한다. 육각형의 지붕 아래 시가 새겨진 대리석 묘석이 있고 관은 그 아래 땅속에 안치돼 있다. 살며시 대리석 위에 손을 얹어 보았다. 햇빛을 받아서 그런지 따뜻하고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이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서정시인 하페즈(Hafez'1325~1389). 시라즈에서 태어나 신학을 공부하고 아랍어와 시문학에 전념하여 교사로서 생애를 보냈다. 평생을 사랑했던 고향에서만 살았으나 당시 그의 명성은 멀리 인도, 중앙아시아에까지 알려졌었다. 아름다운 리듬과 음악성이 담긴 서정시는 대자연과 술, 여인을 칭송하는 내용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연애에 대한 내용이 담긴 시에 능통했다. 그러나 이 연애시는 신에 대한 사랑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독일의 시인 괴테는 하페즈의 시집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데 은유나 상징어 등 시적 소재들을 참고한 시집도 펴냈다고 한다.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는 시로 인해 '비밀의 혀'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그의 시집은 코란처럼 점치는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코란을 펼쳐보며 점을 치는 것은 이슬람 교리에 위배됨에도 불구하고 널리 퍼졌었다. 이란이나 시리아 지방에서는 코란 대신 유명시인의 시집을 사용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수피즘의 성인인 '루미'나 '하페즈'의 시집 등이 사용된다. 마음을 가다듬은 후 시집을 펼쳐 오른쪽 페이지의 내용으로 점을 친다고 한다.
이란을 여행하다 보면 어디서나 책 읽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은 시문학에도 특별한 애착을 가진 것 같다. 이스파한의 토요 모스크에서의 우연한 만남 이후 느낀 생각이다. 모스크를 방문했을 때 광장에는 전통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하페즈보다 먼저 태어난 이란의 위대한 시인 잘란루딘 루미(1207~1273)의 생애를 테마로 한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 나온 시민들이었다. 이슬람의 시성으로 불리는 루미는 이슬람 문화권에서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사랑을 받고 있다. 루미의 시집은 셰익스피어 책보다 더 많이 팔렸다고도 한다. 페르시아의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 영화에서 이들은 거의 엑스트라에 가까운 역할이지만 시인을 너무 좋아해 자원봉사자로 나온 사람도 많다고 한다. 시인의 생애를 영화로 만든다는 발상도 신선했다. 휴식시간을 보내고 있던 이들은 한국에서 온 일행들이 가까이 다가가자 한꺼번에 몰려왔다. 서로 포즈를 취해주며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고 가이드 통역을 사이에 두고 한참 동안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들에게 호감을 표현한 이들은 한국인과의 화기애애한 시간을 아이들처럼 좋아했다.
순박하고 티 없는 이들은 자기들이 시인이라며 자부심을 표현했다. 함께 어깨동무하고서 느낀 따스함은 무엇일까. 하페즈 영묘에서 시인과 대화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발견했던 인류애의 감정, 그것은 시인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글'사진: 박순국(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sije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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