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노예계약 200만명 '찬란한 봄'

입력 2013-04-25 10:22:03

제2금융권도 연대보증 폐지…자영업자 빚더미 공포 탈출

'금융 연좌제'로 불리는 연대보증이 제2금융권에서까지 폐지되면 200만명에 달하는 연대보증인들도 차차 숨통이 트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연대보증이 없어지면 영세 자영업자 등 서민층이 오히려 대출을 받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어 이에 대한 대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사람 목숨까지 빼앗는 연대보증

경북 포항에서는 지난 2010년 유흥업소 여종업원 3명이 서로 연대보증을 서며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렸다가 억대에 달하는 빚 독촉을 받던 끝에 잇따라 목숨을 끊는 비극이 일어났다.

지난해에는 병원 건물 매매 잔금 1억여원을 갚지 못해 채무 독촉에 시달리던 병원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 채권자가 연대보증인을 찾아가 감금·폭행한 사건이 충남 천안에서 일어났다.

서민을 끝없는 빚의 구렁텅이로 끌어들여 '금융의 독버섯'으로 불리는 연대보증 제도가 7월부터 전면 폐지된다.

시중은행에서는 이미 지난해 폐지된 제도다. 그러나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할부금융사, 보험사, 카드사, 캐피탈사 등 제2금융권에서는 아직도 남아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보증은 함부로 서면 안 된다'는 금언이 떠돌 정도로 연대보증은 그 위험성과 해악이 컸다.

혈연이나 정에 묶여 친인척이나 지인의 연대보증을 섰다가 대신 떠안게 된 막대한 빚 때문에 '채무 상환의 노예'로 전락, 패가망신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A씨는 몇 년 전 친척의 부탁으로 연대보증을 섰다가 2억여원에 이르는 거액의 빚을 떠안았다. 친척이 사업 실패 뒤 스스로 목숨을 끊자 그 채무가 고스란히 A씨에게 넘어온 것이다.

자신의 책임도 아닌 빚을 악착같이 갚던 A씨는 끝없는 채권추심에 시달리다가 위암까지 걸렸다.

15년 전 사업을 하며 은행과 보증보험 등 여러 금융기관에 사업체의 대표 자격으로 연대보증을 섰던 B씨는 회사의 부도처리 뒤 수십억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집을 포함한 모든 재산은 채권자에게 넘어갔다.

B씨는 신용불량자가 된 이후 10여년간 제대로 된 직업도 갖지 못한 채 부인의 적은 수입에 의존해 월세방에서 근근이 생계를 잇고 있다. 보증회사에서 보증채무 연장을 신청, 어마어마한 빚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B씨는 이를 갚을 방도는 없어 채무 변제를 이미 포기한 상태다.

◆'빚더미 공포' 연대보증인 200만명

정부가 제1금융권에 이어 제2금융권에서도 연대보증을 완전히 폐지하기로 한 것은 한순간에 연대보증에 발이 묶여 빚더미에 올라앉는 사례를 없애겠다는 의지다. 중소기업이 관행처럼 굳어진 연대보증 요구에 응했다가 경영자는 물론 그 친척이나 지인 등 보증인까지 어느 순간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다반사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연대보증은 원칙적으로 폐지됐지만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할부금융사, 보험사, 카드사,캐피탈사 등 제2금융권에는 아직 연대보증이 살아있다.

금융위원회 등에 따르면 제2금융권의 연대보증 규모는 75조8천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대출 연대보증은 51조5천억원에 141만명이 매인 것으로 보인다. 1명당 3천650만원 정도다.

대출 연대보증은 저축은행이나 상호금융회사 등이 돈을 빌려주면서 신용이나 담보를 보강하라고 요구할 때 이루어진다.

보증보험사가 부족한 보험료를 연대보증으로 메우도록 하는 이행 연대보증의 경우 23조3천억원의 대출금에 55만4천명이 묶인 것으로 추정된다.

◆기존 연대보증자 구제책은

금융위가 마련한 '연대보증 폐지 종합대책'에 따라 7월부터 제2금융권에서도 신규 연대보증은 없어진다.

신·기보는 '사업자 등록증에 등재되지 않은 비공식 동업자'가 예외적으로 연대보증을 설 수 있도록 했지만 최근 국회 정무위에서 개정안이 통과돼 이런 예외도 7월부터 없어진다. 대부업체의 경우 규모가 큰 곳은 대부분 신용대출을 취급하고 소형 대부업체만 연대보증을 요구하고 있지만 연대보증 폐지를 대부업권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소형업체들만 연대보증을 요구하고 있어 대부업계는 연대보증 폐지 실효성이 높지 않을 수 있지만 적용 가능성을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미 연대보증이 끼어 있는 대출은 유예기간을 두거나 대환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지난해 5월 연대보증을 원칙적으로 폐지한 시중은행들은 대출 신규와 갱신 시에는 연대보증을 세우지 않고 기존에 연대보증으로 묶인 대출을 연장할 때만 예외적으로 입보를 허용하고 있다. 이런 예외 조항 또한 2017년까지 5년간만 적용된다.

이경달기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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