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을 권리…마음의 근육을 키워라

입력 2013-04-20 08:00:00

일상화된 '멘붕' 벗어나기

'멘붕'이 일상화 됐다.

멘탈(mental'정신)이 붕괴될 정도로 충격을 받을 일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장기불황, 부동산 하락, 중산층 붕괴, 재난 및 대형사고 등 녹록지 않은 현실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우울증 유병률, 자살률, 이혼율, 성인 남성의 흡연율도 OECD 회원국 가운데 상위권이다. 멘붕 상태가 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힐링'을 내세운 서적이나 영화, 드라마 등이 각광을 받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치유되지 않는다. 휴식과 위로를 위해 또다시 소비를 해야만 해 더욱 피로할 뿐이다.

멘붕 탈출을 위해서는 진정한 '멘탈 갑'이 되는 길밖에 없다. '멘탈 갑'이 된다면 우울증과 자살, 불안장애 등 사회적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뿐 아니라 진정한 '갑 중 갑'이 될 수 있다.

난세에 영웅 난다고 했던가. '멘붕 시대'의 해결사로 멘탈 갑들이 등장하고 있다. 멘탈 갑은 멘탈과 갑(甲)을 이은 것으로 의지와 정신력이 강하다는 의미의 신조어. 멘탈 갑은 실생활에서는 물론 드라마, 연예, 스포츠, 영화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멘붕 탈출 '멘탈 갑'

'올해 진짜 살을 빼서 시집을 가든지, 아니면 평생 혼자서 살든지.'

직장인 장양미(가명'35) 씨는 올해 초 맞선을 보러 갔다가 멘붕에 빠졌다. 상대 남성이 마주 앉은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약속이 있다"며 자리를 떴기 때문이다. 찻값도 계산하지 않고 사라지는 뒷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으레 있는 일이라 생각한 장 씨. 그러나 이어서 날아온 주선자인 언니의 휴대폰 문자 메시지에 또다시 멘붕에 빠지고 말았다.

'바빠?' '아니.' '안 바쁘면 살 좀 빼지.'

장 씨는 이를 악물고 다이어트를 하기로 결심했다. 일명 '멘탈 갑 프로젝트'. 튼튼한 멘탈을 육성해 다이어트를 평생 습관이 되도록 몸에 익히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실천 상황을 매일 체크하고 그날그날 목표 달성 여부를 기록하기로 했다. 멘탈 헬스 특별강연회 등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몇 달 후 장 씨는 진정한 멘탈 갑으로 성장했고 맞선계의 '갑'이 될 수 있었다.

"'내 정신세계의 주인은 나'라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기쁨이나 슬픔, 두려움과 같은 감정은 '나'라는 바다에 부는 파도에 불과하다. 때로는 큰 파도가, 혹은 작은 파도가 오기는 하지만 금방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작은 건설회사에서 대기업의 하도급을 따내고 그들이 요구하는 사소한 업무처리까지 맡았던 김신영(30) 씨는 재계약과 신규계약을 위해 대기업 담당자의 비위를 맞추던 2년여의 직장생활을 접었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고 시도했지만 피곤한 '을'의 입장은 나아지지 않았고 회의감이 들어서다. 퇴사 후 그는 유명 건설회사에 들어갔고 드디어 '갑'이 되었다. 누구보다 '을'의 사정을 잘 알고 있어 웬만하면 하도급 업체 직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살갑게 대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문제는 엉뚱한 곳에 있었다. 사소한 서류상의 실수에도 권위적인 공무원들의 면박을 받기 일쑤였고 팀에서도 상사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을'의 입장이 반복되는 것이었다. 결국 '멘탈 갑'이 되기로 결심한 김 씨. 이를 악물고 각종 건설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고 외국어 자격증까지 갖춰 공무원이나 직장상사 앞에서도 큰소리를 치는 진정한 '멘탈 갑'으로 변신했다.

◆'멘탈 갑' 열풍

'멘탈 갑' 열풍이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다. '유리 멘탈' '휴지 멘탈' '강철 멘탈'과 같은 용어들도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다. 갑과 을이 치열한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현대사회. 갑이 돼야 하는 사회다. 갑이라도 그냥 갑이 아니다. 손해 보거나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갑 가운데 갑인 '멘탈 갑'이 돼야 한다.

'멘탈 갑' 스타들은 일찌감치 인터넷상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네티즌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스타들로 실력과 극강의 정신력을 갖춰 멘탈 갑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밴쿠버올림픽 당시 금메달을 딴 김연아 선수는 '멘탈 갑' 중 최강으로 손꼽힌다. 올림픽 당시 피겨 여자 싱글 경기 중 라이벌인 아사다 마오가 실수 없는 연기를 펼친 뒤, 일본 언론과 마오 선수가 기뻐서 난리를 피우는 와중에도 김 선수는 '픽' 하는 웃음을 선보였다. 이후 보란 듯이 세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후 김 선수는 피겨 여왕의 자리와 함께 '멘탈 여왕'으로 등극했다. 김 선수는 2013 국제빙상경기연맹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2년 만에 국제 무대 복귀를 화끈하게 신고했다. 그것도 압도적인 차이로 우승해 진정한 멘탈 여왕의 위엄을 한껏 과시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류현진 선수는 새롭게 떠오르는 '멘탈 갑'. 두둑한 배짱과 큰 무대에서도 주눅이 들지 않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한국의 멘탈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멘탈 갑에 대한 기대와 욕구가 강해서일까. 멘탈 갑에 대한 대중의 욕구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허구의 멘탈 갑도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다.

최근 방영 중인 TV드라마 '직장의 신'에 나오는 미스 김(김혜수 분)이 대표적인 인물. 비정규직 800만 명 시대. 대한민국의 꿈은 통일이 아니라 이 시대의 갑인 정규직이 되어버렸다. 이때 미스 김은 자발적 비정규직을 선택했다. 그렇다고 을이 아니라 '슈퍼 갑'이다.

아첨과 아부, 줄타기, 선후배 계급, 정규직과 계약직의 차별 등에 맞선다. 수당을 주지 않으면 회식에 참석하지 않고 가식적인 인간관계는 만들지 않는다. '사회생활을 빙자해 강요하는 직장문화는 폭력'이라는 독설도 서슴지 않는다.

대신 오직 실력으로만 승부한다. 수많은 자격증과 철저한 업무처리로 누구도 그의 능력에 토를 달지 못한다. 오히려 정규직 사원들도 미스 김에게 쩔쩔매면서 도움을 요청할 정도. '을'이 아닌 '멘탈 갑'으로 분한 미스 김의 활약에 시청자들도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다.

2월에 개봉했던 영화 '남쪽으로 튀어'에서는 새로운 멘탈 갑이 튀어나온다. 이름에도 '갑' 자가 들어간 주인공 최해갑은 "너무 애쓰지 말자, 애쓰지 않아도 잘만 살 수 있다"며 진정한 멘탈 갑의 모습을 보여준다. 할 말은 하고, 못마땅한 건 하지 않는 최해갑은 제멋대로 정해진 국민연금에 대한 거부, 납득할 수 없는 TV 수신료의 거부, 부실한 학교 급식과 관련해 당당하게 교장 면담을 요구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멘탈 갑이다. 여기에 공무원에게 "나라가 언제부터 국민들을 걱정했냐"며 '국민 거부'를 선언하는 등 가진 것은 없어도 멘탈만은 최강인 진정한 멘탈 갑의 기준을 제시했다.

◆'멘탈 갑' 육성

이 같은 열풍에 힘입어 이 시대의 멘탈 갑을 육성'전파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이달 12일부터 이틀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정신건강박람회. 올해로 3회째를 맞는 행사로 100여 명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함께하며 멘탈 갑 육성의 자양분 역할을 톡톡히 했다. 멘탈 갑이 되기 위한 다채로운 강연과 정신건강 테스트를 진행했다.

멘탈 갑 연구소의 활동도 활발하다. 2011년 12월 만들어진 멘탈 갑 연구소는 이 시대의 진정한 멘탈 갑 육성과 연구를 위해 만들어진 커뮤니티다. 국내외 멘탈 갑 인물을 추적하고 분석하여, 리포트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운영 1년 만에 하루 방문자 수가 300명을 돌파했다. 멘탈 갑 트레이닝, 멘탈 갑 캐릭터 분석 및 대화 등이 주요 연구 분야다. 매달 멘탈 갑을 선정하는가 하면 멘탈 갑이 되기 위한 필독서 등을 선정하며 멘탈 갑 육성'전파에 앞장서고 있다. 지금까지 정치인 노회찬'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심리학자 김정운, 영화감독 장항준, 개그맨 김국진, 고전평론가 고미숙 등 사회 각 분야의 멘탈 갑들을 발굴했다.

최근에는 오프라인으로 모임을 확대하고 있다. 이 연구소 측은 을에서 진정한 멘탈 갑으로의 변신을 원하는 사람을 위주로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래서 연구소의 활동에 참가할 수 있는 조건으로 사는 게 힘들거나 장기간 시험에 도전중이거나 취업준비생 등 우리 사회의 '을'인 사람으로 제한했다. 단, 엄친아'엄친딸, 돈, 미모가 뛰어나서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는 사람은 참가를 제한했다.

멘탈 갑 연구소 관계자는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진정한 멘탈 갑은 학벌'재산 등 인프라가 강한 사람이 아니라 강한 정신력으로 한 분야의 갑이 된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추적'발굴하는 동시에 누구나 정신력으로 갑이 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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