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급식, 이의 있습니다] <중> 위태로운 최저가 입찰제

입력 2013-04-15 11:12:09

최저가 기준 공고→ 업자들은 더 낮게→ 결국 '출혈 경쟁'

대구 북구 태전동에 위치한 한 급식업체가 식재료를 납품하기 위해 지입 차량에 물건을 싣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대구 북구 태전동에 위치한 한 급식업체가 식재료를 납품하기 위해 지입 차량에 물건을 싣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10일 오전 6시 30분 대구 북구 태전동 모 급식업체. 줄지어 선 탑차에 식료품을 싣고 있다. 콩나물, 양파, 무, 어묵, 닭고기, 대파, 양배추 등 수십 가지 식재료가 수북이 쌓여 있다.

이 업체는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30여 개 학교에 급식 재료를 제공하고 있다. 탑차 운전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갈 식료품을 싣기에 정신이 없다.

탑차 운전자 김모 씨는 "오전 5시 30분에 도착해 일일이 식재료를 점검해 차에 싣는다"며 "이 시간에 나오지 않으면 학교 검수 시간을 맞출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업체 대표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다. 새벽부터 나와 정신없이 움직이지만 수익이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마진이 별로 없는 식재료를 제한적인 최저가 공개입찰로 전환하면서 급식업체의 수익이 크게 낮아져 모든 업체가 푸념을 하고 있다"고 했다.

◆ "고사 직전이다!" vs "과장됐다!"

대구 시내 급식업체 20여 곳이 대구지역 400여 개 초중고의 식재료를 담당한다. 시장 규모만 연 1천200억원에 이른다. 업체 관계자들은 매월 24~28일 컴퓨터 앞을 떠나지 않는다.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많을 때는 하루에 150여 개 학교의 입찰 공고가 뜬다.

하지만 미리 단가를 뽑아놓고 이를 기준으로 입찰에 참여하는 업체는 거의 없다. 워낙 급하게 입찰이 진행되다 보니 '묻지마 입찰'이 대부분이다.

월평균 35개 학교를 낙찰받는 모 업체 사장은 "입찰 때 단가를 뽑아 마진을 계산할 여유가 없다"며 "기본 인력과 시설 등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적정 수의 학교를 낙찰받아야 회사가 운영된다"고 했다.

제한적 최저가 공개경쟁입찰인 학교 급식은 입찰 공고금액이 1천만~2천만원은 90% 이상, 2천만~5천만원은 87.745% 이상, 5천만원 이상은 최저가격에서 낙찰이 이뤄진다. 하지만 급식업체들은 이 같은 제한적 최저가 공개입찰제가 급식업체를 옥죄는 주범이라고 지목한다.

입찰 전 과정은 이렇다. 교육청 공무원, 학교 행정실장, 영양사, 학부모, 급식업체 관계자 등이 매월 5, 6일 도매시장과 대리점, 농협 등지를 다니며 시장조사를 하고, 각 학교는 이를 기준으로 입찰 공고 가격을 결정한다. 이를 15~18일 인터넷상에 올린 뒤 일주일 공고를 한다. 이어 공개입찰이 이뤄진다.

급식업체 관계자들은 이런 시장 조사가 현재 가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한 급식업체 대표는 "적정가격이 아닌 최저가를 시장조사 가격으로 결정하고, 각 학교가 이를 기준으로 입찰을 하면 급식업체는 이보다 더 낮은 가격을 써내야 한다"며 "이 때문에 업체의 마진은 더욱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2월 한 달 동안 30여 개의 학교에 식재료를 납품한 한 급식업체 대표가 밝힌 한 달 매출액은 1억432만4천200원이고, 식재료 매입액은 1억151만2천여원이다. 이익금은 281만1천여원.

하지만 자체 소유한 탑차 2대와 지입 탑차 6대 등 8대에 들어가는 운영비까지 포함하면 적자를 피할 수 없다. 다만 두부, 어묵 등 자주 거래하는 식재료 가공업체로부터 할인을 받고, 납금 기일을 맞출 경우 3~4% 추가 할인을 받아 겨우 업체를 운영한다.

해당업체 대표는 "별도로 여직원을 둘 형편이 안 된다. 가족들이 함께 이리저리 뛰면서 겨우 밥 먹고 살고 있다"며 "장비와 차량, 근무 인력 등이 있는데 당장 돈을 벌 수 없다고 문을 닫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지난해에만 4개 업체가 부도가 났고,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대출을 받지 않은 업체가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며 "대기업이 학교 급식에 뛰어들지 않는 것도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급식업체 사정이 열악하다 보니 납품트럭이 지입으로 운영되면서 식품을 운반한 지입차량이 다른 물건을 싣고 운행해도 막을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대구시교육청 관계자는 "제한적 공개경쟁입찰이 도입되면서 수의계약 때보다 수익이 줄어든 것은 맞지만 고사 직전이라는 것은 과장된 표현"이라며 "운영하지 못할 정도로 적자가 나면 왜 운영을 하겠느냐"고 했다.

한 급식 관련 전문가는 "수의계약 때는 통상 15% 선의 이익이 보장됐지만 제한적 공개경쟁입찰이 도입되면서 5~6% 정도로 이익이 줄어들었고, 급식업체 입장에서는 이익이 대폭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값 싸고 함량 미달 식재료 들어 있어" "학교 요구 까다로워…불량품은 교환"

◆"재료 품질 하락" vs "교환 충실"

제한적 최저가 공개입찰제 도입 이후 학교에 제공하는 식품의 품질 하락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시장조사 가격보다 낮은 낙찰가에 입찰한 급식업체는 마진을 올리기 위해 상대적으로 품질이 떨어지는 식재료를 공급하고, 이를 급식 조리에 사용하면 자연스레 급식의 질까지 떨어져 학생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수의계약과 비교해 무, 배추, 양파 등 1차 농산물이 상대적으로 질이 떨어지고 있다고 급식 관계자들은 지적했다. 또 햄이라도 급식업체가 마진을 맞추기 위해 고기 함량이 떨어지는 제품이 들어오는 경우도 빈번하다. 수산물은 육안으로 신선도를 확인하지만 원산지를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실제 학교 검수 과정에서 1차 농산물에 원산지가 표시돼 있지만 이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판매처에서 원산지를 조작해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

대구시내 학교 급식 식중독 사고도 늘어나는 추세다. 2010년과 2011년 각각 1건이던 식중독 사고가 지난해 3건으로 대폭 늘어난 것.

대구시내 한 초교 영양사(43)는 "원산지는 판매처가 제공하는 정보를 믿을 수밖에 없다. 검수 과정에서는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이 전부"라고 했다.

한 조리 종사원은 "눈으로 봐도 품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적잖다. 학교에서 요구한 품질에 비해 모양과 크기 등이 불량한 것들이 띄엄띄엄 들어 있다"고 했다.

영양사, 학교 관계자, 학부모 등이 제품 조리에 앞서 품질 검수를 하지만 육안 검수로밖에 진행할 수 없는데다, 불량 제품에 대해 교환을 요구해도 조리 시간에 맞춰 교환되기가 쉽지 않다.

한 중학교 영양사는 "교환한 제품이 학교에 오는 데 시간이 걸리고, 그때까지 조리를 시작하기도 어려워 교환을 요구할 때는 항상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3천여 명의 전교생에게 급식을 제공하는 대구시내 한 고교 영양사는 "매월 초에는 교환을 종종 한다. 그래야 급식업체에서도 긴장감을 갖고 원하는 식재료를 갖고 온다"고 했다.

달성군 모 중학교 학교운영위원장인 박성태 대구시의원은 "최저입찰제 도입 이후 식재료의 질이 상당히 떨어져 하향 평준화됐다. 검수 심사 시스템을 보강하고 적격심사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부 급식업체 관계자들은 "영양사들이 요구하는 품질이 워낙 까다로워 질이 떨어질 경우 곧바로 교환을 요구한다"며 "급식업체 마진이 줄어들어도 식재료의 품질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기획취재팀=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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