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실크로드 탐험대' 대장정] <하>구화산∼허난성∼시안

입력 2013-04-12 10:15:11

중국 불교 성지가 된 신라 왕자 출가 장소

안후이성 치저우시 구화산의 아침은 안개로 덮여 있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정상 부근에서 바라본 구화산은 운무를 감싸 안아 마치 무릉도원 같았다. 신라 왕자 출신이었던 김교각(696~794) 스님도 속세를 떠나 이곳 구화산에서 구도한 뒤 출가했다. 이후 김교각 스님은 화성사(化城寺)를 짓고 불법을 설교하다가 99세의 나이에 참선 중 입적했는데 육신이 3년 동안 썩지 않자 제자들이 금물을 입혀 등신불(等身佛)로 봉헌해 육신보전에 봉안했다. 탐험대가 찾은 지난달 29일에도 많은 불자들이 이곳을 찾아 법당 앞에서 향을 피우며 제를 올리고 있었다. 김교각 스님은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에서는 지장보살왕으로 알려진 유명 인물이다. 김교각 스님은 중국에서 최고의 수도승 지위에 올랐고 생전 교화활동이 지장보살과 흡사하여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인식되었고 스님의 활동으로 구화산을 중국 불교 4대 명산과 불교 성지로 만든 인물이다.

실크로드 탐험의 여정은 역시 쉽지 않았다. 중국 탐험이 중반을 넘어서자 감기 환자, 복통, 설사 등을 호소하는 탐험대원이 27명이나 되었다. 우리 선조들도 힘든 여정으로 이 길을 걷다가 굶주림, 질병, 풍토병 등의 이유로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머나먼 이국땅에 묻혔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이후 탐험대원들은 장보고가 무령군소장을 지냈던 장쑤성 쉬저우를 탐방하고 북송시대 장택단이 청명절 모습을 그린 청명상하도를 바탕으로 당시 모습을 재현해 만든 민속촌인 청명상하원과 허난성 박물관을 견학했다. 이달 2일 탐험대원들이 방문한 곳은 선종과 무술로 유명한 소림사. 이곳은 신라시대 진감 선사 혜소(774~850) 스님이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사찰이다.

3일 탐험대는 뤄양시 롱먼석굴로 향했다. 롱먼석굴은 북위 시대인 5세기 말부터 당나라 때인 9세기까지 롱먼산과 샹산의 암벽을 따라 약 1.5㎞에 걸쳐 2천300여 개의 석굴과 벽감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는 신라인이 조성한 동굴인 신라상감이 있지만, 탐험대가 도착한 날은 공사 중이라 입구가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어 내부를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또 롱먼석굴 부근에는 신라 고승인 원측 스님의 다비식이 거행된 장소이기도 하다. 다음 날 탐험대원이 찾아간 곳은 건릉. 건릉은 당나라 고종과 측천무후의 합장묘로 61개국 외국 사신들의 석상이 있는 곳이다. 모든 석상은 훼손되어 목이 절단된 상태였다. 당시 신라와 당나라의 활발한 교류로 신라 사신 석상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어느 석상이 신라의 것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건릉 탐험을 끝으로 탐험대원들은 국내와 중국 6개 성 15여 개 도시 총 거리 5천66㎞를 이동하며 탐험을 마치고 4일 오후 최종 목적지인 시안에 무사히 도착해 입성식을 가졌다.

이번 탐험은 실크로드의 역사 인식을 새롭게 하고 신라의 정체성과 국제적인 역할을 모색했다는데 큰 의미를 담고 있다. 대학생 이지혜(대구한의대학교 한의학과) 탐험대원은"이번 탐험을 통해 신라인들의 모험성, 개방성과 개척정신을 깨달았다"며 "역사는 그저 지나간 과거로 생각했는데 미래를 담고 있는 그릇인 것을 느꼈다. 한국에 돌아가면 실크로드 탐험을 친구들과 나누고 역사의 중요성을 함께 공감하고 싶다"고 말했다. 실크로드 탐험의 한계와 아쉬운 점도 나타났다. 먼저 중국 당국과 사전 협의가 부족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중국 측의 민감하고 냉담한 반응으로 애초 계획되었던 4차례의 환영행사가 취소되거나 대폭 축소되었다. 또 경주가 실크로드 기점이라는 발언과 고구려, 발해 영토 문제 등에 대해서도 발언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이 계속 이어져 원활한 탐험이 진행되지 못했다. 탐험대원들의 실크로드에 대한 선행학습 부족과 빡빡한 일정으로 단편적인 지식전달에 지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윤명철 탐험대장은"실크로드를 망구조로 본다면 경주는 실크로드의 중요한 거점이면서 동쪽의 기점이자 종점이다. 앞으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가해 신라와 실크로드에 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며"실크로드 지역이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인 면에서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국가발전 전략과 연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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