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물든 평야 너머 푸르른 남해바다…'상춘 나들이' 최고의 조망
남도답사 1번지 강진에는 명산이 즐비하다. 그것도 예전부터 전해오는 명산이 아니라 근래에 각광받아 명산의 반열에 오른 산이 대부분이다. 그 대표적인 산이 주작산, 덕룡산, 만덕산, 수인산, 별매산, 흑석산, 가학산, 보은산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덜 알려진 산이 바로 보은산 우두봉이다. 산의 높이라야 겨우 439m. 전남 강진군 강진읍과 군동면에 위치해 있다. 처음 접하는 분들은 당연히 동네 뒷동산에 불과하다고 여길 수도 있으나 한 번 다녀오면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는 산 중의 하나다.
강진읍과 강진벌을 굽어보며 바다와 산, 사찰을 망라한 원 없는 조망을 즐길 수 있다. 거기다 등산로 입구에 영랑생가가 있어 유적답사산행이 가능하고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금곡사까지 벚꽃길이 조성되어 상춘(賞春)의 봄나들이 코스로는 더 없이 안성맞춤이다.
멀리서 보면 소가 풀을 뜯어 먹고 있는 형상을 닮았다 해서 우두봉이다. 산행 시작점은 2곳. 들머리와 날머리로 동시에 이용되는 영랑생가(永郞生家)와 금곡사다. 페이스 차이가 나거나 하산 후 다양한 먹거리와 유적산행을 목적이라면 금곡사로, 대형버스를 가져가거나 원점회귀가 아니라면 영랑생가가 들머리다.
영랑생가는 전남 강진에 있는 시인 김영랑(본명 김윤식·1903∼1950)의 생가로 중요민속자료 제252호로 지정되어 있다. 시인이 1948년 9월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주하기 전까지 45년간 살았던 곳이다.
시인의 집을 두루 돌아본 후 본격적인 등산에 나선다. 우측 남도 유배 길을 따라 150여m를 오르면 금서당이 나오는데 강진의 신교육 발상지로 예로부터 서당 역할을 한 곳이다. 영랑 김윤식도 이곳에서 5년을 수학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사립 금릉학교에서 강진공립보통학교를 거쳐 강진중앙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면서 강진 지역에 신학문을 보급하는 터전이었던 곳이다.
우측으로 조금 더 진행하면 충혼탑이 나오고 그 아래에 등산안내도가 있다. 등산로는 넓은 임도로 산책로 수준이다. 오름길 중간에 정자가 보이고 강진산성 흔적을 지나면 약수터 삼거리다. 등산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직진 오름길 능선은 우두봉 정상으로 바로 짓쳐 오르는 코스로 정상까지 약 1.6㎞의 거리다. 좌측으로 난 임도는 약수터를 통과해 고성사를 둘러본 후 우두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직진하는 등산로보다 800여m가 더 긴 약 2.4㎞다.
등산 거리가 짧아 고성사를 둘러보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약수터에서 시원한 물 한잔을 먹고서 산책로를 걸으면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나온다. 우측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면 다원이 나오고 곧이어 고성사다. 고성사를 둘러보고 홍매화 한 컷을 증거로 남기고 되돌아 나와 다원 옆 좌측으로 난 등산로를 따른다. 오름길에서 바라보는 고성사가 훨씬 운치가 뛰어나다.
산으로 이어진 길이 편백나무 숲을 통과하고 이윽고 주능선 삼거리에 도착한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데 좌측이 솔치로 표기되어 있다. 우측 능선으로 방향을 잡고 주능선에 오르면 다시 삼거리다. 좌측이 일봉산을 거쳐 태봉으로 가는 길이고 우측이 우두봉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우두봉 정상에 서면 누가 산 높이를 숫자에 불과하다고 했는지 그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까마득한 산 아래쪽으로 강진 읍내와 강진만의 남해바다가 조망되고 주변의 이름 없는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올망졸망하게 수놓아진다. 산불초소가 있고 늘 산불감시원이 상주하고 있다.
조망을 즐기고 삼거리까지 되돌아 나와 일봉산(409m)으로 향한다. 능선 곳곳에서 뒤돌아보면 선명하게 조망되는 강진의 명산 흑석산과 가학산, 별매산, 월각산이 멋지다. 그리고 그 우측 너머로 영암 월출산 국립공원이 조망의 대미를 장식한다. 그리고 일봉산에서 바라보는 장흥과 보성의 명산들도 볼거리다. 산태봉을 비롯해 까치내재 너머로 억불산과 사자산, 제암산들이 차례로 조망된다.
낮은 산릉인데도 불구하고 어느 곳에서나 천혜의 전망대다. 조망하나만큼은 그야말로 끝내주는 산이다. 발아래 금곡지를 비롯해 드넓은 평야 너머로 남해바다가 조망되고 산태봉에 다다르기 전 짧은 암릉이 나타나 단조로운 육산의 등산로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산태봉 정상에서도 다시 한 번 조망을 즐기고 나서 까치내재로 방향을 잡으면 우측 지능선과 골짜기 아래로 금곡사가 그림 같다. 오늘 등산 중 최고의 백미는 금곡사 앞쪽의 바위능선. 까치내재로 내려서기 전 우측으로 형성된 암릉으로 접어들면 별로 위험하지 않은 등산로가 아기자기하고 스릴이 있다. 사면이 탁 트여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이따금씩 뒤돌아서 보면 산태봉과 그 주변의 능선들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우두봉은 강진읍 주민들이 등산과 산책을 겸할 수 있는 운동코스로 하루에도 500여 명이 찾는다. 그러나 아직은 타지 사람들에게는 철저히 무명 산이다. 그렇지만 주변에 모란향내 그윽한 영랑생가와 금곡사, 다산 정약용 선생이 머물렀던 고성사 등이 등산로 길목에 자리하고 있어 테마가 있는 산행지로 급부상 중이다.
영랑생가에서 등산을 시작해 낙서재, 고성사, 우두봉, 일봉산, 산태봉을 거쳐 금곡사 앞쪽 바위능선으로 금곡사로 하산하는 데 약 7㎞의 거리로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하산 지점인 금곡사(金谷寺)에는 보물 제829호로 지정된 금곡사 삼층석탑이 유명하다. 강진 읍내에 유명한 한정식집이 많아 먹거리 산행으로 연계해도 멋진 코스가 될 수 있다. 4월은 보은산 등산의 최적기로 이번 주가 정점을 찍는다.
글·사진 지홍석(수필가·산정산악회장) san3277@hanmail.net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