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났다. 지지하는 측에서는 아주 짧고, 반대하는 측에서는 너무나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해서 한쪽에서는 평가하기에 이른 시간이라고 말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그럴 줄 알았다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양측의 입장이 모두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분명한 것은 새로운 정부가 대통령 개인의 독단과 권위에 끌려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지도자의 덕목이 강력한 리더십에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정부는 출범 이전부터 마치 그간의 정부가 대통령의 강력한 카리스마가 부족했던 양, 모든 결정을 대통령 개인에게 맡겨두고 있는 듯하다. 정부 부처를 이끌어갈 인사들의 낙마사태는 이미 예견된 것이라는 일부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대통령이 자기편 만들기에만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38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공화당 소속의 포드가 이글스의 노래 '호텔 캘리포니아'를 듣고 "이렇게 멋진 음악을 누가 만들었냐?"고 물었다. 이 말을 듣고 "이 친구들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그룹입니다"라고 보좌관이 대답하자 대통령은 "이 사람, 정말 멋이 없구먼, 음악에 정당을 이야기 하는 것은 옳지 않아"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 국가의 지도자에게는 직언과 아첨을 구분할 줄 아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후보자 시절에는 지지자와 반대자로 나뉘게 마련이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면 지지자만의 대통령이 아니기에 오히려 자신을 반대했던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더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무리 말해도 과하지 않다.
'애매모호'라는 모임이 있다. 모임의 성격이 분명하지 않다는 뜻에서 처음엔 농담처럼 부르기 시작하다가 이제는 이름이 굳어져 버렸다. 가끔 사람들이 모임의 이름이 왜 애매모호인지 물을 때, 그 구성원을 말하면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사회의 진보와 보수언론의 대표적 아이콘인 H신문사와 J신문사의 기자와, 지역신문의 양대 산맥에 몸담고 있는 기자들, 그리고 패션디자이너와 대학교수, 문화저널의 편집장과 여류시인, 그리고 방송사 아나운서와 회사원에 이르는 구성원에 나이도 다르고 이념적 스펙트럼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흔히들 말하는 사회적 통념으로는 어울리기가 힘들게 보이지만 만나는 시간과 장소를 정해놓지 않고도 누군가가 모임을 공지하면 대부분의 회원들이 한걸음에 달려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현재 일도 다른데다 생각마저 다른 사람들로 구성된 이 모임이 꽤 오랜 시간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다양성의 인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연말, 대선에서 지지하는 후보가 서로 갈리기도 했고 결과를 두고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모임이 깨지지 않았던 이유는 다른 사람의 주장을 들으려는 공동체의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젊은 날에는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이영희 선생의 말이 깊이 있게 와 닿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비로소 진보와 보수의 의미를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다. 세상은 옳고 그름의 자기주장만을 내세워서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 사회는 서로에게 마음을 열 필요가 있다. 그 정점에 대통령이 있음은 물론이다.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양희은의 노래, '인생의 선물'을 듣는다.
/봄산에 피는 꽃이 그리도 그리도 고을 줄이야/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 정말로 몰랐네/ 봄산에 지는 꽃이 그리도 그리도 고울 줄이냐/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 생각을 못했네/ 만약에 누군가가 내게 다시 세월을 돌려준다 하더라도/ 웃으면서 조용하게 싫다고 말할 테야/ 다시 또 알 수 없는 안개빛 같은 젊음이라면 생각만 해도 힘이 드니까/ 나이 든 지금이 더 좋아/ 그것이 인생이란 비밀/ 그것이 인생이 준 고마운 선물(양희은 '인생의 선물')
오랫동안 세상에 각을 세우며 살아오면서 그것이 옳다고 믿어왔다. 후회를 하진 않지만 이제 쉰을 넘으면서 노랫말처럼 봄꽃의 아름다움이 보이기 시작하고 가난한 이웃들의 아픔도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바른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제 겨우 나이가 든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전태흥 미래TNC 대표사원 62gueva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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