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봉산동 문화의 거리'가 적혀 있는 입구를 시작점으로 화랑 나들이를 시작했다. 화창한 햇살에 인적이 드문 텅 빈 거리가 멀리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키 큰 조형물이 오늘따라 다리를 더 크게 벌리고 있는 듯하다. 사람 눈높이쯤에는 광고 전단이 붙었다가 떨어진 흔적이 마치 다리의 상처에 반창고를 붙인 것 같다. 또 담장의 벽화 앞에는 비닐봉지에 어설프게 담긴 쓰레기가 반쯤 흩어져 있다.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문명의 부산물이 없기야 하겠느냐만 오늘따라 눈에 거슬리는 흉한 것이 먼저 보인다.
다행히 반대쪽 작은 꽃집 앞 화초들이 연한 화장을 하고 성급한 봄 마중을 나와 웃고 있다.
봉산문화회관 앞에서 늘 많은 문화 행사를 알리느라 빽빽이 달려있던 현수막이 거의 보이질 않는다. 어떤 가게는 문이 닫힌 채로 임대를 알리는 문구가 안타깝게 붙어 있다. 인적이 뜸한 거리에서 문 닫게 된 사연을 짐작하게 한다. 그래도 안면이 있는 액자 가게 주인은 쉬지 않고 무엇인가 분주히 손을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문이 열려 있는 화랑 몇 곳에 들렀다. 화랑 안은 너무 조용하다. 크게 들리는 발걸음 소리 때문에 발바닥에 힘을 주어 조심스럽게 내딛는다. 조명등을 끄고 있다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급히 조명등을 켜는 화랑도 있다. 오래 머무르기가 미안하다. 평소 친분이 있는 화랑 대표의 밝은 인사에 조금은 걸음을 더디게 움직인다. "이제 날씨가 풀리면 많은 전시로 바빠지겠네요?"라는 인사에 "봉산동은 아직 한겨울입니다"라고 한다. 체념 섞인 표정 속에는 걱정스러움이 커 보인다. 공감하면서 화랑을 나와 잠시 걷는다. 오고 가는 지인들과 숱하게 마주치면서 진한 악수로 반가움을 나누며 자석에 끌리듯 막걸리 집으로 향하던 시절이 아련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봉산동에 나오면 습관처럼 찾는 곳이 있다. 화랑 안쪽 사무실에서 보이는 작은 정원 때문에라도 이곳을 지나칠 수 없다. 고즈넉한 분위기에 나이 먹은 석등을 가운데 두고 작은 대나무들과 몇 개의 석상이 정겨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화랑에 들어서는 순간 놀라운 표정으로 한참을 서 있었다. 내부가 깔끔하게 새로이 단장되어 있다. 잘 맞는 세련된 봄옷으로 갈아입은 것 같다. 무거운 기분이 순간 사라지고 잠시 전시 중인 작품과 함께 녹는다. 실내 환경이 감정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또 실감하게 된다. 한참 동안 여러 가지 대화를 엮으면서도 한층 새롭게 느껴지는 작은 정원에 연신 눈길이 간다. 자세히 보니 고개를 들어 흙을 비집고 올라오고 있는 꿈틀거림이 있다. 분명히 봄을 알리는 녹색의 생명체이다. 이처럼 봉산동 거리도 이제 침체의 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켜고 봄을 맞았으면 한다. 인파로 북적대는 서울 인사동 거리가 자꾸 그려진다.
김윤종<화가 gilimi8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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