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행복한 삶이란" 객관적 준거 제시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의 전 분야에 걸쳐 탁월한 업적을 남김으로써 '만학의 아버지'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얻었다. 그는 플라톤의 제자로 아카데미아에 들어왔지만 나중에는 철학 동료가 되었으며, 독자적인 철학사상을 전개했다. 전승되고 있는 그의 저작은 플라톤이 남긴 저작의 두 배가 넘는다.
그는 많은 저서를 남겼지만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저서는 실천철학에 속한 '니코마코스 윤리학', '정치학', '시학' 등이다. 이러한 책 중에서도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가장 많이 읽히고 있다. 여러 역본이 있지만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강상진'김재홍'이창우 선생에 의해 국역됐다.(도서출판 길)
이 책의 주제는 행복이다. 그리스어 'eudaimonia'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우리말이나 영어는 없지만 편의상 '행복', 'happiness'로 번역되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저자가 통속적인 행복관과는 달리 객관적인 행복관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행복관이란 삶이 자신이 봐도, 그리고 타인이 보더라도 행복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행복관이 성립하려면 행복의 객관적인 준거가 있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준거로서 내적 선과 외적 선을 제시했다. 내적 선은 지적 탁월성과 도덕적 탁월성을 의미한다. 전자는 교수 활동에 의해, 후자는 습관에 의해 학습 된다. 그가 제시한 지혜'사려'용기'절제'관후 등은 모두 내적인 것으로서 한 번 획득하면 분실하거나 도난당하지 아니한다. 이러한 탁월성들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줄어들지 않아 타인도 그것을 자유롭게 획득할 수 있다.
저자는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외적 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적 선에는 친구'재산'사회적 지위 등이 포함된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경쟁적으로 좋아한다. 따라서 이런 것들은 사랑하는 데는 어느 정도 한계를 둬야 한다. 친구'재산이 너무 많거나 적으면 내적 선들을 돌볼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된다.
모든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식 행복을 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좁은 국토에 많은 국민이 살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먼저 지식인들이 객관적인 행복관을 가질 필요가 있다. 지적 탁월성이 주는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들이 외적 선을 두고 경쟁적으로 다투는 것은 아름답지도 못하고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신득렬 전 계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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