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을 위한 '삶의 콘텐츠'를 품다
눈에 보이는 '지리'를 담는다. 지리에 얽힌 세상의 '지식'도 담는다. 그렇게 쌓인 정보는 후대에 '지혜'로 전수된다. 무엇이 그런 역할을 할까? '지도'(地圖)다. 인류는 지도에 과거를 표시해 현재를 살피고 미래를 기획한다. 지도는 문명의 나침반이다.
◆인류의 오랜 의사소통 도구
각종 지도학개론서가 공통적으로 말하는 지도의 기본은 '의사소통'이다. 지도를 만든 사람과 읽는 사람 간에 오해 없이 지리 정보가 전달돼야 한다는 것. 이를 충족하면서 지도는 넓은 지역의 공간적인 사물을 축소해 효과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또 예술성을 적절히 가미해 전달력도 높여야 한다.
그러면서 지도는 당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요소들도 담는다. 보물지도에 보물 위치가 빠지면 안 되듯이 지도에는 그 시대 사람들이 '갈구'하는 지리 정보가 담긴다. 그래서 시간이 흐른 뒤 지도는 훌륭한 역사자료가 된다. 지명'건축물 등의 흔적은 물론 정치'교육'산업 등 인문'사회적 현상까지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 남는 것이다.
◆지도는 '숨은' 생활필수품
지도 제작은 관찰 및 취재한 것을 그림과 글로 구현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지도 제작자는 높은 숙련도는 물론 지도에 담기는 지역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춰야 한다. 특히 지방자치시대가 되면서 지역을 담는 지도의 의미는 더욱 중요해졌다.
29년이 넘게 우리 지역 지도를 제작하고 있는 곳이 있다. 대구 중구에 있는 '대구지도센타'다. 이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지도가 있다. 배달업소'부동산중개업소마다 벽에 붙어 있는 커다란 대축척 지번도다. 한 개 구나 몇 개 동 정도만 지도에 담기 때문에 모든 번지수가 표시돼 있고, 작은 골목길까지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실은 우리가 배달 음식을 빨리 먹을 수 있도록 해 준 숨은 공신이란다.
주인 윤경자(59'여) 씨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도로가 새로 나는 등 우리 지역 지리의 변화상을 수시로 체크해 지도를 업데이트한다. 컴퓨터를 활용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인쇄 기술의 발달로 언제든 최신 지도 출력이 가능해졌다"며 "관공서'학교'영업사원이 많은 회사 등 다양한 곳에서 맞춤형 지도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의 발달로 디지털 지도도 나타나고 있다. 이미 우리 주변에 널리 보급돼 있다. '내 손 안의 지도'인 스마트폰 지도 애플리케이션과 '내 차 안의 지도'인 차량 내비게이션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하늘에서 위성으로 세계 곳곳을 찍은 영상지도를 검색해 볼 수 있는 '구글 어스'와 특수 카메라로 찍은 길거리 사진을 3차원 영상으로 볼 수 있는 '스트리트뷰'(로드뷰) 등이 인터넷에서 인기리에 서비스되고 있다.
◆관광객 모으고, '스토리' 담는 지도
기본적인 지리정보만 담던 지도는 점차 다양한 정보를 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이 각종 레저용 지도다. ▷교통과 관광 정보를 특화한 교통관광지도 ▷거리는 물론 소요 시간도 나타낸 등산지도 ▷저수지와 댐의 낚시 포인트를 나타낸 낚시지도 ▷골프장 홀 모양을 실제 모습 그대로 확대해 그려 넣은 골프지도 등은 이제 고전이 됐다.
요즘 나오는 지도는 더욱 다양한, 그리고 맞춤형의 정보를 담고 있다. 지자체마다 관광 활성화를 위해 내놓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관광지도가 대표적이다.
대구 관광안내 웹사이트(utour.daegu.go.kr)에서 신청을 하면 관광안내지도 및 가이드북을 우편으로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지도 종류가 참 다양하다. 대구 전체를 담은 기본 지도는 물론 동성로 등 도심 확대지도'팔공산 등 관광지별 상세지도'시티투어 코스지도'맛집과 숙박시설 안내지도 등이다. 지도마다 상세한 관련 설명이 담겨 있어 초행자도 지도 하나만 있으면 큰 불편 없이 대구 방방곡곡을 누빌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지자체마다 '스토리텔링'을 접목한 '문화+관광' 콘텐츠 발굴에 주력하면서 관련 지도도 필수로 나오고 있다.
대구 중구청은 지난해 1월 '대구산업공구지도'를 제작해 배포했다. 북성로'서성로 등 중구 일대에 펼쳐진 일명 '공구골목'을 지도로 나타내고, 관련 역사 자료도 곁들였다. 경상북도와 경주시가 후원하고 매일신문사가 최근 펴낸 '왕의 길'은 신라 주요 여섯 왕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담은 책이다. 설화를 근거로 각색을 더한 것이지만 이야기에 나오는 석탈해가 걸었던 토함산길이나 신문왕이 걸었던 월성~감포길 등은 가서 실제로 걸어 볼 수 있는 길이다. 매력적인 이야기가 관광코스를 만들면 자연스레 함께 이뤄지는 작업이 바로 지도 제작이다.
◆지도의 인문학
좀 더 나아가 '인문+지리'적 시도가 지도로 구현되고 있다. 2008년 경북대 문화사회학 실습팀은 두 권의 책으로 된 '이야기가 있는 경북대 문화지도'를 펴냈다. 이 책은 경북대 캠퍼스를 8개 구역으로 나눈 뒤 대학건물'길'연못 등 60여 곳에 대해 이야기와 지도를 함께 묶어 소개했다. 3년에 걸쳐 작업을 진행하고 학생들을 지도한 천선영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캠퍼스의 건물과 장소들이 60년 세월 동안 품어온 정겨운 이야기들을 문화지도라는 이름으로 하나하나 살려냈다. 이 작업이 '일상을 문화로 기록하기'의 한 예로 이해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출간된 상희구 시인의 시집 '대구'에는 1900년대 '대구읍 지도'가 실려 있다. 일종의 '삽도'(揷圖) 역할을 하는 셈이다. 지도가 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책 내용의 이해를 돕고 흥미를 끄는 역할을 하는 것. 이는 시인의 의도와 일치한다. 시집에서 대구의 옛 지명들은 시의 시어로 쓰이고, 각주에는 지명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담겼다. 즉, 지리적 요소(지도'지명)가 인문적 요소(시)를 극대화한 예로 볼 수 있다.
◆상상력 담아 미래로 가는 지도
잘 만든 지도는 '수익'도 창출한다. 한국야쿠르트의 판매권역 GIS(지리정보시스템)가 대표적이다. 야쿠르트 아줌마들은 저마다 머릿속에 자기가 맡은 구역의 시장 정보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본사 경영진과 공유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GIS 기술이 등장하면서 전국에 흩어져 있던 종이지도의 판매권역을 모두 디지털로 옮기고, 아줌마들 머릿속에 있던 판매원'상품'매출 정보를 GIS에 연동시켰다. 이후 전국의 상품 매출 변동 및 시기별 변화 추이 등이 마치 일기 기상도처럼 모니터에 표현되기 시작했다. 현재 GIS는 많은 기업이 '공간 마케팅'의 하나로 활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도가 의사소통 기능은 물론 '상상력'을 담는 도구로 진화하고 있다고 본다. '지도, 세상을 읽는 생각의 프레임'의 저자 송규봉 GIS유나이티드 대표는 "지도의 표현 대상은 생물체의 DNA부터 광활한 우주의 성체까지 다양하다"며 "지도는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는 가장 보편적인 의사소통 수단이고, 앞으로 미래 창조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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