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남편들의 명절

입력 2013-02-05 11:09:53

아이와 어른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눈이 내리면 즐겁기보다 걱정이 앞서고, 명절이 다가오면 설레기보다 한숨부터 나오는 것도 어른의 특징 중 하나일 것이다.

이맘때면 명절 증후군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차례상 준비와 손님맞이로 고생하는 아내들의 피로와 고통을 지칭하는 말이다. 명절 증후군 예방과 해소법으로는 남편들의 적극적인 도움과 관심부터 족욕, 마사지, 온천탕, 충분한 수면, 즐거운 여가 활동 등을 권유한다.

솔직히 말해 명절 증후군과 냉온탕을 이용한 해소법이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쓴웃음이 나온다. 일 년에 한두 번 명절을 치르는 것조차 그토록 벅찬 체력이라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하다.

하여간 명절에 대해 온 세상이 한마디씩 거드는 탓에 명절은 정말 고달픈 과업이 되어 버렸다. 누구는 일찍 오고, 누구는 늦게 오고, 누구는 아예 준비가 다 끝난 뒤에 왔다가 금방 달아나는 바람에 동서 간 갈등이 되고, 부부 간 형제 간에 다툼이 된다. 육체적 증후군이 심리적, 관계적 증후군으로까지 발전하는 것이다.

흔히 남자들은 명절에 가만히 앉아서 차려주는 음식이나 먹지 않느냐고들 한다. 맞다.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명절 증후군'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 그러니까 지금의 50, 60대 이상 주부들이 종일 부엌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그랬다. 그러나 요즘은 남편들도 명절이 괴롭다.

차례상 준비, 출석 순서와 관련해 여자 동서들끼리 모인 부엌에서 어떤 불평이 쏟아질 것인가. 본가와 친척들 집에서 얼마나 일찍 일어나야 아내가 불만을 터뜨리지 않을 것인가. 너무 서둘렀다가 형수의 눈총을 사는 것은 아닐까. 집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아내는 어떤 지혜로운 말로 형제자매를 헐뜯을 것인가.

지인들 중에는 차라리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이 꽤 많다. 명절날 본가에 잠시 들렀다가 곧바로 처가로 달려가 종일 전을 편다는 사람도 있다. 그래야 집안이 편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명절날 아들 많은 집은 썰렁하고, 딸 많은 집은 사위와 딸 외손자 외손녀로 미어터진다고 한다.

노모들도 며느리 눈치를 못 이긴다. 그래서 서둘러 아들 내외를 처가로 보내고, 딸 내외를 맞이한다. 눈치 보며 며느리 부리기보다 시집간 딸들 모셔놓고 몸소 밥상을 차리는 게 더 편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순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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