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진 밥그릇] 시대별 '감량' 변천사

입력 2013-01-31 14:07:05

밥 먹는 양 점점 줄어…70년 전의 1/3 크기로

밥그릇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 70년 만에 3분의 1 크기로 작아졌다. 식기업체에 따르면 현재 생산되는 밥그릇의 용량은 평균 270cc로 나타났다. 이는 식기 업체가 1942년 판매했던 900cc 용량의 밥그릇 대비 30% 정도에 불과하다. 밥그릇 용량이 70년 새 3분의 1로 줄어든 셈이다.

시대별로 보면 밥그릇 용량(평균치)은 1940, 50년대 530~550cc였다가 1960년대 500cc를 거쳐 1970, 80년대 450cc까지 줄었다. 그리고 서구식 식생활 문화가 널리 확산한 2000년대 350cc로 다시 줄었다.

최근에는 300cc 벽마저 깨졌다.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 식기 업체들도 한국인의 식습관 변화에 대응해 밥그릇 크기를 줄이고 있다. 한 외국 식기업체는 국내 시장 진출 20년 만에 새로 출시한 한국형 밥그릇은 용량이 330cc로 기존 제품(450cc) 대비 25% 적다.

이를 실증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자료가 한 업체에 의해 알려졌다. 도자기업체 '젠한국' 은 1940~80년대 밥공기와 1990년부터 현재까지 자사에서 만들어 판매 중인 밥공기의 용량 비교 자료를 공개했다. 젠한국 측은 "밥공기의 크기는 그 시절 소비자들이 섭취하는 식사량을 반영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밥공기 크기의 변천사가 곧 밥 먹는 양의 변천사와 같다고 봐도 된다"고 했다.

이 회사에 따르면 밥공기 용량은 1940년대 680cc에서 1950년대 670cc, 1960, 70년대 560cc로 조금씩 줄어들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390cc로 급격히 줄었다. 이후 1990년대엔 370cc로 줄어들었고, 2000년대 들어선 290cc로 더 작아졌다.

현재 일반 가정과 식당 등에서 흔히 쓰이는 밥공기는 290cc짜리다. 이는 1940년대 밥공기 용량(680cc)에 비하면 약 40% 수준. 70여 년 만에 한국인의 밥 먹는 양이 60% 가까이 줄어들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에 반해 국대접의 크기는 크게 변하지 않았으며 약 10도가량 오목하게 좁아진 게 특징이다.

변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젠한국' 측은 '반공기' 밥그릇도 출시할 예정이다. '반공기'란 밥을 기존 밥그릇의 절반 정도만 담을 수 있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 반공기에 물을 가득 채우면 190cc로, 흔히 볼 수 있는 종이컵과 용량이 같다. 앞으로 밥그릇이 지금 쓰고 있는 것(290cc)의 3분의 2 수준으로 더 작아진다는 말이다.

젠한국 관계자는 "290cc 용량의 밥그릇보다도 더 작은 크기의 밥공기를 찾는 소비자가 늘었는데 그만큼 밥 먹는 양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며 "이런 추세를 반영해 반공기를 개발하게 됐다"고 했다.

식당에서 많이 쓰이는 스테인리스스틸 밥공기 크기도 예전보다 작아졌다. 과거에는 식당에서 뚜껑 없이 높이가 높은 입주발을 주로 사용했으나 요즘은 뚜껑이 있는 납작한 합주발을 사용하고 있다.

서문시장의 한 그릇 도매업체 관계자는 "합주발이 보온 저장이 뛰어나다는 면도 있지만 그보다 식당 고객들의 먹는 양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밥 섭취량은 왜 갈수록 줄까

밥그릇 크기가 줄어든 것은 우리 국민의 식생활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과거 먹을거리 문화가 밥 위주로 단순했다면 요즘에는 빵과 국수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식사량이 줄어든 것이다. 다이어트 열풍으로 소식하는 인구가 늘어난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식기 업계 관계자는 "먹을거리가 부족했던 과거에는 한 끼 식사량이 많을 수밖에 없어 밥그릇도 컸다"면서 "하지만 식습관이 서구화되고 소식 인구가 늘어 한 끼 식사량이 줄어들면서 밥그릇도 작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 식품영양학자는 "조선시대에는 현대인의 두세 배인 500~600g 정도의 밥을 끼니마다 먹었다"면서 "웰빙 열풍과 함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소식(小食) 위주 식단이 권장되는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한 주부는 "50'60대 장년층은 건강을 위해서, 20'30대 젊은 층은 다이어트를 위해서 식사량, 그중에서도 특히 밥 양을 줄였다"며 "밥 대신 빵을 먹는 등 식생활의 서구화도 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하루 쌀 소비량은 1984년 자료 작성 이후 줄곧 내리막이다.

◆조선시대 식사량

얼마 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조선시대 사람들의 식사량을 알 수 있는 사진이 공개돼 누리꾼들의 시선을 끈 적이 있었다.

'조선시대 식사량' 제목의 사진을 보면 왜소한 체구의 한 남자가 밥과 반찬이 차려진 소반을 앞에 두고 밥을 한술 뜨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남자의 밥상 위 밥그릇과 국그릇의 크기이다. 사람의 얼굴보다 더 큰 밥그릇과 국그릇에는 마른 체구의 남자가 다 먹을 것이라고 믿기지 않는 많은 양이 담겨 있는 것이다. (사진)

임진왜란 당시를 기록한 '쇄미록'이라는 책에는 '조선의 성인 남자가 한 끼에 7홉(420g)이 넘는 쌀, 즉 5공기 정도 되는 밥을 먹는다'는 내용이 나온다. 7홉은 우리가 먹는 일반 밥공기의 약 5배가 되는 엄청난 양이다.

또 '용재총화'라는 책에도 '가난뱅이는 빚을 내어서라도 실컷 먹어대고, 군사들은 행군 시 군량 짐이 반을 차지하며, 관료들은 수시로 모여 술을 마신다'는 등 대식(大食)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1. 박정순(가명'61'여'달서구 월성동) 씨는 최근 결혼한 아들 집에 갔다. 박 씨는 밥공기에 밥을 절반밖에 담지 않는 며느리를 보고 "밥을 수북이 담아야 복이 들어온다"고 잔소리를 했다가 며느리로부터 "요즘 밥 많이 먹으면 미련하고 촌스럽다"는 타박을 들었다. 박 씨는 더 할 말이 없었다.

#2. 결혼한 지 15년 된 김서연(44'수성구 지산동) 씨는 혼수로 해온 식기를 바꾸기로 했다. 10년이 넘어 새것으로 바꿀 이유도 있었지만, 밥그릇과 국대접이 너무 커 유행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김 씨는 "맞벌이라 집에서 밥 해먹을 일도 별로 없는데다 밥 또한 많이 먹지 않아 작고 예쁜 식기로 바꾸기로 했다"고 했다.

#3. 부부 모두 일하는 맞벌이 가구가 늘면서 갓 지은 밥으로 아침 밥상을 차리던 풍경도 바뀌고 있다. 5세 딸을 둔 워킹맘 남순연(34) 씨는 요즘 수프나 시리얼로 아침식사를 대신한다. 남 씨는 "출근 준비에다 아이 유치원 등원 준비까지 하려면 밥을 차려 먹을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