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뇌병변 1급 박은채 양

입력 2013-01-30 07:00:00

일어서지도 못하는 다섯살 "경련약 독해 이 썩었어요"

부이티하(34) 씨가 딸 은채(5)를 안고 눈물을 훔치고 있다. 품속의 아이는 앞으로 은채의 앞날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부이티하(34) 씨가 딸 은채(5)를 안고 눈물을 훔치고 있다. 품속의 아이는 앞으로 은채의 앞날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내 동생~ 곱슬머리~ 개구쟁이 내 동생~"

주영희(66'여'대구 북구 검단동) 씨가 뇌병변을 앓고 있는 손녀 박은채(5) 양을 안고 노래를 불러주자 은채가 방긋 웃는다. 그러나 웃고 있는 은채는 다섯 살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고 가녀리다. 고개도 가누지 못한다. 주 씨는 "다섯 살이 됐는데 다리에 힘을 못 줘서 걷기는커녕 서 있는 것조차 힘겨워한다"며 "그래도 할미와 어미 말은 알아듣는지 좋아하는 노래 들려주면 방긋 웃으면서 노래가 나오는 쪽으로 쳐다본다"고 말했다.

◆죽은 줄 알았던 아이

은채의 어머니 부이티하(34) 씨는 베트남에서 왔다. 남편 박의환(38) 씨와는 7년 전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만나 결혼했다. 부이티하 씨는 박 씨의 순박하고 착한 심성이 마음에 들어 결혼해 한국에 와서 살게 됐다. 남편이 5살 때 앓은 경련으로 지능이 남들보다 낮다는 사실은 결혼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은채를 가진 건 2007년이었다. 임신 중에도 유산의 위험을 몇 번 넘긴 부이티하 씨는 2008년 8월 마침내 은채를 낳았다. 하지만 부이티하 씨는 마냥 좋아할 수 없었다. 분만실이 급박하고 분주하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은채를 보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인공호흡도 하고 그랬어요. 아이를 저에게 안겨주지 않고 갑자기 어디로 데리고 가기에 저는 아이가 죽은 줄 알았어요."

은채는 부이티하 씨 배 속에 있을 때 삼킨 양수를 제대로 뱉어내지 못해 양수가 폐에까지 가득 차 있던 상황이었다. 의사들이 응급조치를 했지만 역부족이어서 결국 은채는 태어나자마자 동산병원으로 이송돼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했다.

할머니 주 씨는 인큐베이터에 여러 개의 호스가 몸에 꽂힌 채 누워 있는 은채의 모습을 보며 억장이 무너졌다. 주 씨는 "평생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어서 당황도 많이 했고 '왜 하필 이런 일이 우리 가족에게 일어나는가'하는 생각에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났다"고 말했다.

◆병원, 병원, 병원'''

은채의 고난은 인큐베이터를 벗어나서도 끝나지 않았다. 인큐베이터를 벗어난 은채에게 젖을 먹이자 20㎖도 채 먹지 못하고 입과 코로 토해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은채는 빨아들이는 힘이 약했다. 결국 코로 영양식을 넣어 음식을 섭취하도록 했다. 병원에서는 은채가 뇌병변 1급 장애라고 판정을 내렸다.

두 살이 됐을 때 은채의 온몸이 갑자기 굳기 시작하며 40℃ 이상의 고열과 함께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부이티하 씨는 아이를 안고 병원 응급실로 뛰어가야 했다. 은채는 지금도 경련약을 먹고 버티고 있다. 하지만 이 약의 부작용으로 은채의 이는 점점 썩어가고 있다. 부이티하 씨는 "약이 매우 독한데다 가루약 형태로 먹이다보니 치아에 묻어 치아가 자꾸 삭고 약해진다"고 속상해했다.

은채의 지능도 지금 생후 3개월 정도에 머물러 있다. 다섯 살이지만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옹알이 수준에 그치고 있다. 게다가 제대로 서지도 목을 가누지도 못해 항상 어머니 부이티하 씨나 할머니 주 씨가 은채를 안은 상태에서 돌봐야 한다.

은채가 제대로 씹지도 못하고 소화도 제대로 못 시키는 탓에 질게 지은 밥 두 숟가락과 아주 잘게 자른 부드러운 반찬 조금이 은채의 한 끼 식사다. 주 씨는 "제대로 못 먹어서 힘을 더 못 쓰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은채를 치료하기 위해 부이티하 씨는 병원 이곳저곳을 전전하고 다닌다. 뇌병변 치료를 위해 동산병원, 재활 및 물리치료를 위해 재활병원, 썩어가는 이를 치료하기 위해 치과를 다니고 있다.

문제는 꾸준히 치료해야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치료할 돈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언어'운동재활치료는 건강보험이나 국가지원 대상이 아니라서 돈이 많이 든다. 부이티하 씨는 "언어'운동치료를 한 달 동안 매일 받았더니 병원비만 60만원이 넘게 나와서 결국 언어'물리치료는 포기하고 지금은 물리치료만 받고 있다"며 "그래서 말도 늘지 않고 몸도 여전히 가누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돈 벌어야 치료하는데'''

은채네 가족은 지금 차상위계층으로 지정돼 있다. 아버지 박 씨는 골판지 박스 제조 공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100만원 남짓한 월급과 40만원 안팎의 정부보조금으로는 네 식구의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들다.

이런 상황에 한 달에 은채에게 들어가는 병원비만 해도 아무리 최소화시켜도 30만원이 넘는다. 언어'운동재활은 엄두도 못 낸다. 다음 달 5일에는 자꾸 썩어가는 은채의 이를 더는 내버려둘 수 없어 수술에 들어가기로 했는데 수술비용 150만원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도 막막하다.

이런 상황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할머니 주 씨의 가슴을 찢어진다. 주 씨는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대구시내 극장에서 청소 일로 살림살이 비용을 적잖게 보탰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퇴행성관절염을 앓으면서도 무리해 일한 후유증으로 지금은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병이 악화됐다.

어떻게든 가계에 도움이 되는 뭔가를 하고 싶어 가내수공업으로 전선을 다듬는 부업을 시작했지만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부이티하 씨는 차라리 주 씨에게 은채를 맡기고 돈을 벌러 나가고 싶지만 은채 때문에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엄마가 안 보이면 심하게 보채고 칭얼대기 때문이다.

주 씨와 부이티하 씨는 은채가 '내 동생' 노래에 맞춰 까르르 웃는 모습을 보면 근심 걱정이 어느새 모두 사라지고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그러나 즐거움도 잠시, 앞으로 은채가 살아갈 날 동안 얼마나 아파하고 힘들어할지 생각하면 앞이 깜깜해진다.

"은채가 인큐베이터에서 나온 뒤 은채를 본 간호사들이 '아이구, 검단동에 미스코리아 났네'하면서 얼마나 예뻐했는지 몰라요. 하늘은 무심하게 이 아이에게 예쁜 것만 주시진 않았네요'''"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매일신문'대한적십자사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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