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어떻게 늘 낙천주의자로 살 수 있죠? 그건 다 거짓말이에요, 길들여진." 죽지 않을 만큼 큰 교통사고를 당하고는 '그래도 이만큼인 건 운 좋은 거야'라고 말하는 친구 이야기에 "세상에 운 좋은 사고가 어디 있어요? 세상을 왜 좋게만 보냐는 거죠. 그렇게 큰 사고를 당하면 이렇게 말하는 게 정상 아닌가? '아이 씨. 더럽게 재수 없네.'" 이는 작년 내가 본 영화에서 기억에 남았던 여주인공의 대사이다. 영화 중 라디오 게스트로 나와 하고 싶은 말을 있는 그대로 해대던 그녀는 청취자들에게 예상 밖의 호응을 얻으며 '독설 미녀'라는 별명까지 얻을 만큼 유명해진다. 그녀가 사회를 향해 내뱉는 독설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렇게 쉽게 내뱉지 못하도록 길든 나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었던 것 같다.
요즘 우리나라에 '독설'이 뜨고 있다. 그동안은 정치판에서, 또는 정치를 풍자하는 코미디에 주로 등장하던 독설이 TV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와 함께 심사위원들의 독설이 이슈가 되면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이승철, 방시혁, 윤상, 박진영, 박칼린, 강레오 셰프 등은 모두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을 향한 독설로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았던 심사위원이었다. 그들의 독설은 가끔 보는 이들이 불편할 정도로 '너무한 거 아냐?' 싶으면서도 동시에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전문가의 의견이자 조언이었다. 묘한 카타르시스를 유도하는 이들의 독설은 가끔 악의적인 편집과 더불어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실력은 안 되는데 공부는 하기 싫고, 그저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좋아서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덤벼든 참가자들을 향한 그들의 독설은 한편으로 시청자들에게 직설의 진정성을 인정받으며 공감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독설(毒舌)의 사전적 의미는 글자 그대로 '입에서 나오는 독' 즉, '남을 해치거나 비방하는 모질고 악독스러운 말'이다. 최근 사회적 트렌드와 함께 '독설'은 긍정의 옷을 입고 상대방을 위한 쓴소리, 즉 '아프지만 살이 되고 뼈가 되는 말'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또는 관습적인 이해에 대한 따끔한 일침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앞에 언급했던 영화에서 여주인공의 또 다른 대사가 생각이 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요? 그럼 일찍 일어나는 벌레는요?"
필자는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요즘 젊은이들의 고민을 접하고 있다. 우리 세대와는 또 다른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어떠한 조언을 해주어야 할지, 과거 내 고민에 대한 기성세대들의 조언이란 게 대부분 '꼰대의 일방적인 훈계'로만 느껴졌던 기억이 이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조언을 해 주어야 할지 고민하게 한다. 상대에 따라 다르게 접근하기는 하지만 최근 독설로 돌직구를 던진 게 효과적이었던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독설은 오히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도망갈 여지를 없애버림으로써 이들에게 더 쉽게 다가가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 최고의 독설가로 알려진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독설이야말로 세계를 움직이는 기술이라고 이야기하면서 그의 저서를 통해 '독설의 기술'을 알려주고 있다. 제대로 된 독설을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하며, 가능한 한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또 아주 주관적으로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야 상대방이 아프지만 공감하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필자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배려를 덧붙이고 싶다. 독설과 비난은 구분되어야 한다. 상대방에게 똑같이 강하고 아프게 다가가지만, 비난은 잊지 못할 상처가 되어 흔적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비난은 잘못했다고 다그치고 잘못을 인정하기를 강요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도망가고 싶게 하는 반면, 독설은 스스로 나의 잘못된 점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더 이상 독설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마구 지껄여 대는 재수 없는 말이 아니라, 그 말을 들을 당시에는 소화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나중에라도 생각해 보면 그때 그 말이 진정으로 나에게 꼭 필요한 조언이었음을 인정하게 되는 말이었으면 한다.
김미경/대구가톨릭대 교수·호텔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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