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관치금융의 그림자

입력 2013-01-29 07:35:33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금융권이 잔뜩 몸을 낮추고 있다. 차기 정부가 들어서면 금융지주 회장 상당수가 물갈이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정권이 교체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새 정부가 어떤 주문을 할지도 금융권의 관심 사항이다. 금융권이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낙하산 인사 등 금융기관에 대한 외압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무리가 아니다.

금융권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경제부총리 부활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칫 관치금융의 어두운 폐해가 되살아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경제부총리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없어졌다 5년 만에 다시 생겨났다. 차기 정부에서는 예산과 경제정책조정 기능을 책임지고 있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부총리를 겸임하며 11개 경제부처를 통괄할 계획이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경제부총리 부활은 장'단점이 맞물려 있어 기대와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경제정책조정회의를 통해 경제정책의 결정과 집행의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점은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경우 정책 쏠림과 왜곡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기획재정부 전신인 재정경제원이 공룡 부처로 군림하다 1997년 외환위기 주범이라는 비난에 시달린 끝에 기획재정부, 기획예산처, 금융위원회 뿔뿔이 쪼개진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학계는 우리나라의 관치금융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사라졌다고 평가한다. 정경유착에 의한 자의적인 금융정책과 간섭이 경제 회생의 걸림돌로 지적되면서 관치금융이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했다는 것. 하지만 관치금융이 남긴 역사의 잔재물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이에 따라 새 정부 출범을 맞아 정권에 따라 금융회사 최고 경영자가 바뀌고 금융 자율성이 훼손되는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노총 산하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최근 정기전국대의원대회를 갖고 금융기업에 대한 낙하산 인사와 관치금융을 막아내겠다고 결의했다.

공교롭게 우리나라에서 관치금융이 본격화된 것은 박정희 정부 때다. 1961년 군사 정부는 '금융기관에 대한 임시조치법' 제정과 '한국은행법' '은행법' 개정을 통해 금융을 행정부에 예속시켜 금리 결정, 대출 배분, 인사 등 금융의 모든 활동에 간여했다. 비록 1980년 이후 '금융기관에 대한 임시 조치법'이 폐지되고 시중은행의 민영화가 이루어졌으나 감독권 등을 통해 정부는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흔히 금융은 규제의 대상이지 통제의 대상은 아니라고 말한다. 브레이크(규제)가 없는 금융은 탐욕으로 물든다. 하지만 통제가 시작되면 금융 시스템은 경직되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규제와 통제는 양날의 검 같은 존재다. 자칫 하면 규제를 앞세운 통제가 되기 쉽다. 양자 사이에 균형을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정부 출범 초기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이를 바로잡기가 힘들어진다. 다행히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낙하산 인사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 당선인이 아버지 시대의 산물인 관치금융의 그림자를 걷어 낼 수 있을지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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