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7월 25일 새벽. 아산만의 풍도(豊島) 앞바다에서 가오슝호(高陞號)가 일본 군함의 기습 포격을 받고 침몰했다. 메이지유신을 통해 근대국가로 부상한 일본이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패권국 중국을 향해 전쟁을 개시한 것이다. 그로부터 약 120년이 지난 작년 9월 중국은 항공모함 랴오닝(遼寧)호를 취역시켰다. 원자바오 총리는 "중국의 국방력과 종합국력을 끌어올리는 중대하고도 깊은 의미를 갖는다"고 선언했다. 아편전쟁 이후 중국의 염원인 대양해군 시대를 열면서 동아시아의 군사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작년 10월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와 관련한 국제회의에 참석했을 때, 중국의 젊은 학자가 비공개 석상에서 "중국이 하기에 따라 일본 경제를 20년 정도 후퇴시킬 수 있다"고 한 발언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2000년 당시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일본의 4분의 1 정도였다. 2010년 중국은 세계 제2위의 GDP를 기록하며 일본을 제쳤다. 이때부터 중국은 대외적으로, 특히 일본에 강경자세를 취하고 있다. 1980년대 일본인의 약 80%는 중국에 친근감을 느끼고, 중국에 대한 최대 원조국으로서의 자부심도 컸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본인의 약 80%가 중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을 성공한 나라의 사례로 간주했으나, 요즘엔 실패한 사례로 본다. 반일감정도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이처럼 청일전쟁 이후 100년 이상 지속한 일본 우위의 힘의 관계가 최근 10년 사이에 역전되었다. 이는 일본이 메이지유신 후 청일전쟁을 통해 중국을 밀어내고 동아시아의 패자(覇者)로 등장하는 데 걸린 시간보다 훨씬 짧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적 파워 시프트(power shift'힘의 이동)를 가져와 중국은 미국과 함께 G2의 시대를 열었다.
일본은 최근의 센카쿠 문제를 중일 간 영유권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파워 시프트 속에서 일어난 분쟁으로 인식한다. 중국의 선박과 전투기가 센카쿠 주변을 수시로 넘나들고 있다. 일본이 중국 군용기에 대해 경고사격 방침을 밝히자, 중국은 "(그것은) 개전(開戰)을 의미한다"며 전쟁 불사의 태도를 보인다. 일본은 "중국의 현재는 1930년대 일본과 유사하다"며 경계하고 있다. 1930년대는 일본이 군국주의 길로 접어들면서 만주를 시작으로 중국 침략을 본격화한 시기다.
일본은 중국 위협론을 부각시키고, '가치관 외교'를 기치로 미'일동맹 강화, 아세안 국가와의 협력을 통해 중국을 옥죄려 한다. 미국은 영유권 분쟁에는 개입하지 않으나, 센카쿠는 미'일 방위조약의 적용 대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중국을 견제한다. 미국의 개입 정도에 따라 중'일 대립은 결국 미'중 대결로 이어지게 된다. 1940년대 초 중일전쟁이 미'일 간의 태평양전쟁으로 연결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센카쿠를 둘러싼 중'일의 대립이 전쟁 방아쇠를 당길지는 알 수 없으나, 양국에서 '전쟁'이라는 단어의 사용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역사적으로 어느 한 국가의 급부상은 세력 균형을 깨고, 전쟁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G. 엘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16세기 이후 세계적인 힘이 이동한 열다섯 번 가운데 열한 번이 전쟁으로 귀결됐다고 분석했다. 중화민족의 부흥을 꿈꾸는 중국과, 강한 국가를 재현하려는 일본의 마찰이 세계를 불안케 한다.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의 구조 속에서 한국도 일본의 '가치관 외교' 내에 포함돼 있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일본이 특사파견을 제의하고, 독도 문제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듯한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파워 시프트에 한국이 연계되어 있다는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주변 4강 중 중국에 가장 먼저 특사를 파견했다. 동아시아의 유동적인 힘의 변화 속에서 중국에 좀 더 무게를 두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미'일 삼각 동맹관계의 틀 속에서 한국 외교가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할 시점이 다가왔음을 보여준다. 미국과 일본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외교가 필요하다.
계명대교수·국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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