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피린·훼스탈 있습니까"… 일반 슈퍼 "몇 개 드릴까요?"

입력 2013-01-25 11:35:41

과자처럼 마구 팔리는 가정 안전상비약

지난해 11월부터 24시 편의점의 안전상비약 판매가 가능해진 가운데 무자격 상점에서 일반의약품과 안전상비의약품을 팔고 있다. 신선화기자
지난해 11월부터 24시 편의점의 안전상비약 판매가 가능해진 가운데 무자격 상점에서 일반의약품과 안전상비의약품을 팔고 있다. 신선화기자

24일 오후 대구 남구 봉덕동 한 슈퍼마켓. 입구에 '쌍화탕, 판피린, 훼스탈 등 기본 상비약 준비돼 있습니다'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계산대에도 같은 내용의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기자가 종업원에게 "판피린을 살 수 있느냐"고 묻자, "몇 병 살 거냐. 한 통(5병)도 살 수 있다"며 계산대 아래에서 '판피린 Q' 한 통을 꺼냈다. '판피린 Q'는 일반의약품으로 약국에서만 판매할 수 있다. 약사에 따르면 이 약품은 하루 최대 3병까지 복용할 수 있다. 하지만, 종업원은 약품 복용과 관련해 어떤 주의사항도 알려주지 않았다.

이곳 상점의 진열대에는 까스활명수, 광동쌍화탕 등 일반의약품도 놓여 있었다. 기자가 "훼스탈(소화제)도 파느냐"고 묻자, 종업원은 "훼스탈은 다 떨어졌다"고 말했다. 훼스탈은 지난해 5월 약사법 개정으로 일반 편의점에서도 구매할 수 있게 된 안전상비의약품이다. 약사법에 따르면 이곳 상점은 판피린 Q는 물론 훼스탈과 같은 안전상비약 등 모든 약품을 팔 수 없다. 안전상비약 판매자 등록 업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일부 편의점에서 손쉽게 안전상비약을 구입할 수 있게 된 가운데 판매 등록을 하지 않은 소규모 상점에서 안전상비약, 일반의약품 등이 팔리고 있다. 하지만, 단속에 나서야 할 지방자치단체 보건소는 인력부족으로 단속에 손을 놓고 있어 약물 오'남용이 우려된다.

◆약물 오'남용 우려

보건복지부는 야간과 휴일 의약품 구입으로 인한 소비자 불편을 덜기 위해 약국에서만 살 수 있었던 감기약, 해열진통제 등 안전상비약을 편의점에서도 살 수 있게 했다. 단 안전상비약 판매처는 24시간 운영해야 하며 해당 지자체에 판매 등록을 마친 곳이어야 한다.

안전상비약 구매가 쉬워지면서 판매 조건은 까다로워지고, 안전 관리는 강화됐다. 판매자는 안전상비약 관련 안전성과 품질관리에 관한 교육을 받아야 하며, 위해의약품차단시스템을 설치해야 한다. 또 '만 12세 어린이는 구매할 수 없다'거나 '한 번에 하루분만 구매가 가능하다'는 주의사항을 게시해야 한다. 지난해 12월 현재 대구시에 등록을 마친 안전상비약 판매 가능 업소는 모두 611곳이다.

하지만, 예방조치가 무색하게 시행 두 달 만에 판매 등록을 하지 않은 일반 상점에서 버젓이 안전상비약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안전상비약을 파는 무자격 상점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남구 봉덕동의 또 다른 슈퍼마켓에서도 안전상비약으로 분류된 '판콜에이내복액'을 진열대에 올려두고 판매하고 있었다.

더구나 무자격 상점에서 판매되는 약품들은 판매가 가능한 편의점에서도 팔 수 없는 제품이었다. 보건복지부는 약물 오'남용을 막기 위해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안전상비약 용량을 약국에서 판매되는 일반 약품과 다르게 했다. 훼스탈 플러스정의 경우 약국 제품은 한 통에 10정이 들어가지만, 안전상비약은 6정만 들어 있다.

무자격 상점의 판매자들은 이러한 주의사항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점 판매자에 따르면 이들이 약을 사오는 곳은 북구 매천동 매천시장의 도매상가. 한 판매자는 "도매상가에서 아무렇지 않게 약품들을 팔고 있어 판매가 가능한 줄 알고 안전상비약을 두 달 전부터 팔고 있다"며 "안전상비약을 파는 슈퍼마켓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고 했다. 오히려 기자에게 "지난번 약사법 개정으로 모든 슈퍼마켓에서 판매가 가능한 것 아니냐"고 되묻는 판매자도 있었다.

◆단속 손 놓은 상태

약국을 운영하는 박동훈(65) 약사는 "모든 약은 적당량을 먹으면 도움이 되지만 의사나 약사의 처방 없이 과다 복용하면 독이 된다"며 "기본적인 안전 교육도 받지 않은 곳에서 산 약품을 복용하면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무자격 상점의 안전상비약 판매가 성행하고 있지만 단속할 방법이 마땅찮아 단속원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재 미등록자 등 무자격자 판매 단속과 등록업소 관리감독은 보건소가 맡고 있다. 무자격 판매자는 약사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단속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단속원이 등록업소만 관리'감독하기에도 벅찬 실정이다. 남구의 경우 현재 등록 업소만 37개 곳이지만 담당자는 1명에 불과하다. 무자격 판매자 단속을 신고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남구 보건소 관계자는 "안전상비약 판매 계도기간인 다음 달까지 등록 업체 중심으로 준수사항 이행 여부를 살펴보고 계도기간이 끝나는 대로 무자격 판매자 단속도 시행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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