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국무총리를 고르느라 밤잠을 설칠 것 같다.
지난 주말에도 두문불출했다. 왕조시절에야 영의정쯤 뽑아보고 시원찮으면 하루아침에 갈아치우면 그만이었다. 반대 당파 사람들이 상소 몇 장 올리는 거나 거슬렸지 왕권이 흔들거릴 일은 없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백성이 많이 배워서 똑똑해질수록 통치하기 어려워지는 게 정치다. 박 당선인이 아무리 지혜로운 고심과 결단으로 뽑아놔도 이번 새 정부 영의정(국무총리)은 여'야,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벌집 쑤신 듯이 갑론을박할 여지가 크다. '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 열 개의 눈이 바라보는 곳'이 어느 지점인지 찾아내고 그 접점을 맞춰내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박 당선인은 자신만의 자(尺)를 들고 혼자서 재단해 내는 스타일이다. 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 열 눈이 바라보는 곳과 일치시킬 확률이 낮으면 낮았지 높다고는 할 수 없다.
더구나 이미 대탕평 인사를 하겠다는 큰 테두리의 금을 그어놓은 상태다. 그 금을 넘어서는 인사가 되면 바로 직격탄을 맞는다. 반대로 대탕평이란 기준에만 몰리다 보면 지역 역차별이란 또 다른 반발에 몰린다. 자칫 대탕평과 역차별 방지, 경제 내치에다 국민 통합 기준까지 꿰맞춘 팔방미인을 뽑으려다 보면 정오(鄭五)라는 당나라의 석 달짜리 망국 재상이 나올 위험도 있다. 정오는 재상으로 초빙되자 '아무리 세상에 인재가 없기로서니 내게 재상 차례가 돌아오다니…. 하나 정 내 차례가 되었다면 세상은 알조다'고 한 인물이다. 참 쉽고도 어려운 영의정 뽑기다.
우리 역사 속의 대탕평론이 나온 배경을 잠시 들여다보자. 조선시대 상신록(相臣錄)에 의하면 성(姓)씨 문중별로는 전주 이씨가 상신 22명으로 단연 1위다.(영의정 11, 좌의정 6, 우의정 5명) 개국 집안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다음 2위가 안동 김씨 19명(영의정 10명), 3위(영의정 숫자 기준)는 청송 심씨(9명), 달성 서씨(7명), 남양 홍씨(6명), 동래 정씨(5명), 평산 신씨(5명), 안동 권씨, 덕수 이씨, 파평 윤씨, 경주 이씨, 문화 유씨, 한산 이씨(이상 4명) 등 순위다.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등 삼정승을 배출한 성씨를 기준하면 100개쯤 된다.
요즘처럼 영'호남, 충청, 경기 등 몇 개 출신 도를 따지는 데 비하면 그렇게 요란 떨 정도도 못 된다. 오히려 미리 지역 안배 금 그어놓고 인사하겠다는 지금이 더 이상해 보인다. 정권만 해도 불과 5년 전에는 반대쪽 편이 10년이나 쥐고 있었다. 권력의 속성은 인위적 탕평이 아니라도 민심에 의해 자동 조종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왕조시대 당파를 따지고 문중과 성씨를 따지듯이 출신 지역 따위를 따지는 탕평 인사는 무의미한 금 긋기에 지나지 않는 정치적 소심증인 셈이다. 한 시간만 차 몰고 나서면 3개 도를 관통하며 어울려 먹고사는 시대에 '출신지'와 '호적'을 따지는 통치권의 발상 자체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좀 알기 쉽게 차기 박근혜 정부의 영의정, 장관 인사를 자장면집에 비유해 보자. '박근혜 반점'은 대선 때 '문재인 반점'과 경쟁하면서 서로 우리 집 자장면엔 양파와 감자를 더 많이 넣겠다고 공약했다. 문 반점이 삼겹살을 넣겠다고 복지 공약을 내걸면 우리는 갈매기살과 목살만 넣겠다고 공약했다. 그래 놓고 벌써 적자 나겠다며 감자 많이 넣는 공약은 취소하자는 판이다.
그런 판에 자장면집 주방장을 경상도 사람 쓰면 전라도 사람은 안 먹으러 온다는 식의 관념적 이분법에 얽매여 배달부는 전라도 사람 쓰고 주방장은 충청도 출신 쓰고 홀 서빙은 강원도 사람 쓰겠다는 식의 탕평 인사를 한다면 어떻게 봐야 하나. 자장면집이 잘되려면 배달부는 호적이 어디든 오토바이 잘 타는 사람이 으뜸이고, 주방장은 돼지고기 덜 넣고도 맛 잘 내는 사람이 제일이고 홀 서빙은 재바르고 싹싹하면 제격일 뿐이다. 싹싹한데 호남서 자랐다고 내쫓고 F1 선수 뺨칠 만큼 오토바이 잘 타는데 경상도 출신이라고 안 쓰는 반점이 성공할 리 없다.
밀실서 고민할 것 없다. 이미 답은 나와 있다. '지역보다 능력'(30%)이 영의정 기준의 1순위라는 게 국민 여론조사 결과다. 능력 있어도 대구'경북은 역차별? 염소 담배 씹는 소리다. 구부정해 보이는 열 개의 손가락과 꺼벙해 보이는 열 개의 눈이 바라보는 그곳이 한 사람의 큰 손가락, 한 지도자의 높은 눈이 보는 곳보다 더 정확하다. 그게 민심이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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