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버스 이야기 보따리엔 '아는 사람' 한가득∼
방문 밖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행여 손님이 불편할까 잔뜩 숨죽인 목소리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한참 몸을 뒤척이다 나오니 민박집 할머니가 상을 내온다. 직접 띄운 청국장에 살얼음이 낀 동치미, 조선간장에 푹 삭힌 깻잎절임과 김장김치. 화려하진 않지만 품을 들인 반찬이고, 어느 것 하나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없다. 할머니가 퍼준 '고봉밥'을 게 눈 감추듯이 비웠다. "가기전에 석천계곡은 꼭 둘러보고 가요. 나도 매일 산책을 가는데 정말 좋아." 문 앞까지 나와 배웅하는 할머니를 뒤에 두고 청암정으로 향했다.
◆금닭이 알을 품은 자리
달실마을은 '금빛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금계포란'金鷄抱卵)이라 붙은 이름이다. 마을 뒤로는 나지막한 산이 알을 품듯 감싸고, 앞으로는 내성천이 흐른다. 안동 권씨 집성촌인 이곳은 충재 권벌(1478~1548) 선생이 터를 잡았다. 충재 선생이 후학 양성을 위해 지은 청암정과 충재 고택, 석천계곡과 석천정사까지 명승 60호로 지정됐을 정도로 풍광이 아름답다. 450년 된 양반마을. 일제강점기에는 '충절의 마을'로 불리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가난했다. "한과가 아니었으면 다 굶어죽었다"는 말이 흰소리가 아니다. 사실 달실마을은 기대만큼 고택이 많지 않았다. 무늬만 한옥이라 '100m미인'처럼 멀리서 봐야 예뻤다. 심지어 대리석 벽에 한옥 지붕을 얹은 어색한 집들도 눈에 띄었다. 한옥 모양을 유지하며 생활하기 편한 집을 지으려다 생긴 불협화음이다.
청암정은 마을의 중심에 있다. 거북이 모양의 큰 바위 위에 그림같이 서 있는 정자다. 자연물과 인공물이 이루는 기막힌 조화. 드라마 '동이'와 영화 '음란서생', '스캔들' 등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눈 덮힌 청암정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내성천 물줄기를 만난다. 석천계곡이다. 오솔길 위로 넘어질듯 서 있는 금강소나무 곁을 스치면 겹겹이 서있는 산의 품에서 계곡물이 흘러나온다. 충재 선생의 큰아들인 권동보가 지은 '석천정사'(石泉精舍)는 계곡을 가장 가까이 내려다보는 곳에 자리잡았다. 얼음 밑으로 졸졸 흐르는 계곡과 눈 위로 반짝이는 햇빛이 빚어내는 풍경은 '계곡과 산이 빛을 품고 있다'(계산함휘'溪山含輝)는 현판 그대로다. 오솔길을 따라 5분쯤 더 걸어가면 기암괴석에 '청하동천'(靑霞洞天)이라는 붉은 초서체 글씨가 새겨져 있다. 하도 도깨비들이 설쳐서 선비들이 공부를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권두웅 명필이 이 글씨를 새기고 붉은 칠을 해 쫓아냈다고 한다.
물야면 지림사와 오록마을, 오전약수터 등을 돌아보고 영주시 부석면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마을 입구 유곡1리 정류장에서 봉화읍까지는 버스로 5분이면 충분하다. 봉화읍 방향으로 가는 아무 버스나 타면 된다. 봉화군 내 모든 버스는 봉화공용정류장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퍼진다. 이곳에서 '물야'약수탕'부석' 방면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면 된다. 정류장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얇은 갱지로 만든 버스표도 옛것 그대로고, 연탄난로가 뿜어내는 열기로 간신히 추위에 맞선다. 난로 주변에는 온기를 느끼려는 사람들이 어깨를 맞대고 둘러섰다.
◆지림사와 오전 약수탕
물야면 북지리 지림사는 버스로 10분 거리다. 지림사에는 봉화군의 유일한 국보인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오전 11시 30분에 출발하는 '봉화-물야'약수탕' 버스표를 1천200원을 내고 끊었다. 약수탕으로 가는 버스는 하루 10차례 운행되고 영주 부석면까지도 하루 4번 오간다. 승객들은 '아는 사람 이름 대기'로 말꼬리를 이었다. "어디 사느냐"는 질문에서 시작해 "누구 누구를 안다"는 말로 넘어가는 식이다. "그 사람은 같은 집안이다"라는 말이 나올때쯤 버스에서 내렸다.
북지(숫골)정류장에서 내려 길 건너편으로 300m를 걸으면 지림사다. 신라시대에는 수십 개의 암자를 거느릴 정도로 큰 절이었다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불경을 독경하는 목소리가 절 초입부터 귀를 잡아끌었다. 절 입구부터 법당에서 불경을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귓전을 파고든다. 국보 201호인 마애여래좌상은 호골산(虎骨山)의 호랑이 꼬리 부분 자연 암벽을 조각해 만들었다. 단청이 화려한 보호각 안에 모셔진 높이 4.3m의 거대한 불상이다. 머리 부분이 금이 갔고, 깨지고 닳아버린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지만 네모진 얼굴에 흐르는 담담한 미소는 1천400년 동안 내내 평온하다.
지림사 부근에는 숨겨진, 조금은 민망한(?) 볼거리도 있다. 지림사에서 큰길 방향으로 복지교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강둑을 따라 걸어가면 길이 6m나 되는 거대한 남근석(男根石)이 떡하니 누워있다. 남근이 개천을 향해 오줌을 누는 듯한 형상이다. 이 남근석은 내성천변 제방 공사를 하던 도중에 발견됐다. 여름에는 풀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겨울에는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다.
낮 12시 50분쯤 오전약수탕으로 가는 버스에 다시 올라탔다. 20분쯤 달렸을까. 눈 덮힌 2차로를 휘적휘적 돌아가니 오전약수관광단지다. 관광단지는 약수물로 끓여낸 백숙을 파는 식당들이 빼곡했지만 인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거북이 입으로 졸졸 흘러나오는 약수를 한 사발 벌컥 마셨다. 탄산약수 특유의 쏘는 느낌과 철분 냄새가 났다. 약수는 확실히 맛있어서 먹는 물은 아니다. 오후 2시 40분 오전약수탕에서 봉화읍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지림사에서 약수탕에 올 때 운전하던 바로 그 기사다. 그도 내가 기억나는지 "이번에는 어디까지 가느냐"며 넉살좋게 웃는다.
◆오록마을 사람들
풍산 김씨 집성촌인 오록마을은 버스정류장 건너편 농협주유소 옆길을 따라 1㎞가량 걸어들어가면 된다. 물야초등학교를 지나 제주송이 줄지어선 길을 따라가면 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만난다. 제주송은 마을 터를 잡은 노봉(蘆峯) 김정 선생이 마을의 좌청룡 맥이 약하다며 제주도에서 소나무 씨앗을 가져와 심었다고 한다.
야트막한 산자락 아래 한옥 기와지붕이 고즈넉하게 내려앉은 마을은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왔다. 한옥으로 지은 마을회관에서 할머니들이 모여 화투놀이를 하고 있었다. 화투장을 보던 할머니들이 "대구에서 온 기자"라는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반응이 영 시큰둥하다. "언론에 많이 나왔는데 사람들이 별로 안오더라고. 실컷 취재해도 조그맣게 내고 말이야." 멋쩍게 웃고는 할아버지가 내준 떡과 소주를 오물거리며 옛날 옛적 얘기를 들었다.
1696년 마을 터를 닦은 노봉 선생은 청룡 기운이 약한 마을 동쪽에는 소나무를 심고 남쪽에는 석축을 쌓았다. 마을 가운데로 흐르던 물길은 서편으로 돌렸다. 전에는 의령 여씨와 연안 김씨도 살았지만 풍산 김씨 3파의 종손이 들어오면서 집성촌이 됐다. 김윤섭(74) 할아버지의 안내를 받아 한 바퀴 둘러봤다. 오록마을에는 망와사당과 학사사당, 노봉사당 등 불천위 사당 3곳과 장암정과 노봉정사, 화수정사 등이 옛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김 할아버지는 "마을이 해방 이후 흐트러졌다"고 했다. 광복 직후 극심한 좌우 이념 대립의 물결이 조용한 마을을 흔들었다. 한국전쟁 당시 일부는 북한 의용군으로 입대를 했고, 일부 주민은 국군으로 참전했다. 대대로 내려온 양반 가문은 가진 재산을 처분하며 살림이 궁핍해졌고, 종손과 주민들이 외지로 떠났다. 100가구를 헤아리던 마을은 40여 가구로 줄었다. 2005년 전통문화 체험 마을로 지정되면서 변화의 기미가 보였다. 정부 지원을 받아 무너졌던 고택과 돌담을 보수했고, 마을길도 다시 깔았다. 하지만 정비사업은 마무리되지 못했다. "주민들이 관광객들이 올 거라고 기대를 많이 했는데… 실망이 컸죠. 물야초교 옆에 만든 관광객 주차장도 그냥 놀리고 있고…." 김 할아버지는 "연고가 있는 후손들이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스물아홉 살에 객지로 떠났던 그도 수년 전 홀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마을이 얼마나 유지될지 걱정이라요. 마을 정비도 완료되고 살기 좋아지면 후손들이 돌아올까요?"
◆버스에서 만난 약초꾼
오전약수터에서 오록마을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낯익은 얼굴을 봤다. 봉화공용터미널에서 함께 버스에 탔던 장영준(36) 씨였다. 버스 기사와도 아는 사이인 듯 했다. "오늘 뭐 많이 땄니껴." 버스기사가 버스 뒷자리에 앉은 그에게 큰소리로 물었다. "겨우살이 좀 땄지요." "그건 얼마씩 해요?" "200g에 5천원 씩 받아요." 그가 메고 있던 낡은 군용 더블백(윗부분을 줄을 당겨 묶게 되어 있는 원통형 가방)이 불룩했다.
그는 약초꾼이었다. 반나절 동안 오전약수탕 뒤편 박달령에 다녀오는 길이라 했다. 그가 채취한 건 겨우살이다. 신장병이나 당뇨, 고혈압, 관절염 등에 약효가 있다는 약초다. "박달령 600m 고지까지 가야 딸 수 있어요. 나무에 올라가서 따야되는데 저만 아는 장소가 따로 있어요." 장 씨는 가을에는 버섯을 따고 겨울에는 겨우살이를 채취한다.
그는 "1주일에 한두 번씩 산에 간다"고 했다. 돈이 필요할 때면 약초를 따다가 판단다. 그가 자랑스럽게 500㎖ 생수통을 꺼내 흔들었다. 통 안에는 노란색의 작은 열매가 4분의 1 정도 담겨 있었다. "이게 겨우살이 열매인데 진짜 구하기 힘든거라요. 암환자에 좋은 건데 600g에 30만원은 받아요. 아는 사람이 아니면 절대 못 따는 거요." 그가 "내년에는 인삼을 키울 작정"이라며 싱긋 웃었다.
글'사진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봉화읍 방면으로 가는 모든 시내 버스
06:40, 07:30, 09:35, 10:30, 11:30, 12:40, 14:10, 15:30, 16:20, 17:30
07:10, 08:00, 10:05, 11:10, 13:10, 14:40, 16:00, 16:50, 18:00
06:20, 08:35, 14:5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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