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오는 5월 미국을 방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대통령직 인수위는 곧바로 "검토된 바 없다"며 부인했다. 오히려 인수위와 당선인 주변에서는 박 당선인의 취임 뒤 첫 순방국이 미국이 아닌 중국이 될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반미면 어떠냐'는 발언을 서슴없이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당선되자마자 미국부터 방문했을 정도로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국은 미국이었다. 박 당선인이 미국이나 일본을 제치고 중국을 먼저 찾는다면 '4강 외교'도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것으로 볼 수 있다.
박 당선인도 한미동맹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안보'경제분야를 비롯한 한미 관계의 틀은 공고하게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초기부터 지나칠 정도로 '친미 행보'를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박 당선인의 대중 외교 기조는 이 대통령과 달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국 역시 박 당선인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어 향후 한중 관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10일 박 당선인이 중국 정부의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장즈쥔(張志軍) 중국 외교부 상무부부장을 만난 자리는 양국 사이의 새로운 관계 진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장 부부장이 "중국어로 함께 말할 수 있는 친구같이 여겨진다"며 친밀감을 표시면서 "저도 비행기에서 한국말을 배웠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말을 건네자 박 당선인이 "(한국어) 발음이 어려우셨겠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는) 중국어로는 '신녠콰이러'(新年快樂)"라며 유창하게 중국어로 화답한 것이다. 이날 장 부부장은 시진핑(習近平) 총서기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중국 방문을 요청하기도 했다.
박 당선인의 외교'안보관에는 '원칙과 신뢰'가 녹아있다. '동북아 평화 구축'이라는 틀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고, 북한이 국제무대에서 믿을 만한 국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돕고 북한 스스로도 그런 신뢰 구축 작업을 선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면서 신뢰가 쌓이면, 다른 국가도 참여하는 대규모 경제협력 프로젝트도 추진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박 당선인은 2009년 5월 미국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북핵 해법은 기존 틀을 넘는 포괄적인 구상이 필요하다. 동북아 평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박 당선인은 장 부부장에게 "북한의 핵개발은 국가 안보 및 우리 국민의 안위를 위해서도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추가적인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며 차기 정부의 단호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물론 북핵문제와 남북문제 역시 박 당선인이 구상하고 있는 4강 외교의 큰 틀에서 해법이 마련될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4강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지난해부터 정권이 교체되거나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이 같은 주변 정세 변화는 우리의 4강 외교 틀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미국은 중국을 의식, 한국과의 혈맹관계를 이어가고 싶어한다. 시진핑 시대를 연 중국도 한국과의 관계 강화에 나서고 있고,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도 중국과의 영토 갈등으로 한국과의 협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러시아는 중국에 뒤진 북한 문제에 대해 한국의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들 국가가 박 당선인에게 특사를 파견하면서 공을 들이는 이유다. '박근혜 정부'의 4강 외교는 꽤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순항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 셈이다.
박 당선인의 외교 공약을 보자. 한미 관계는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한중 관계는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발전시킨다는 복안이다. 일본과는 역사인식 재정립을 전제로 '미래지향적 협력 강화'를, 러시아와는 자원 외교를 통한 관계 발전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중국을 통해 한반도 주변 역학관계의 균형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미 우리의 주요 경제협력 파트너일 뿐만 아니라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다. 일본은 한'미'일 3각 동맹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어쨌든 박 당선인의 4강 외교는 출발선상에서부터 이명박 정부 때와는 다르다. 친미(親美)적이지도 친중(親中)적이지도 않다. 일단 균형을 중시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초대 주미대사에 대해서는 총리급 인사를 내보내면서도 외교 관료 출신인 신정승 전 대사를 초대 주중대사로 보낸 것도 한중 관계를 꼬이게 한 결정적 실수였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류우익 통일부 장관을 뒤늦게 주중대사로 보냈으나 중국을 잘 모르는 류 장관이 한중 관계 발전에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박 당선인이 초대 4강 대사를 어떻게 임명하는지도 박근혜 정부의 4강 외교의 변화를 예견할 수 있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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