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세상 별난 인생] 쉰셋 도장집 아저씨, 밤 되자 선글라스 가수 변신

입력 2013-01-10 14:06:30

한밤중엔 또 서예가로 엄덕수 씨

지체 장애인(소아마비) 엄덕수(53) 씨는 참 재주가 많은 사람이다. 엄 씨의 직업은 도장을 새기는 인장가. 그 외 직업이라 하기엔 그렇지만 밤무대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또 서예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장업을 하면서 전각과 서각을 한다. 모두 아마추어를 뛰어넘는다. 그만큼 엄 씨는 다양한 재능을 가졌다.

엄 씨는 현재 대구 수성구 범어동 법원 건너편에서 도장포 '덕인당'을 운영하고 있다. 15㎡ 남짓한 점포에서 하루 종일 손때 묻은 조각도로 직경 15㎜ 안의 우주에 혼을 담고 있다. 벌써 30여 년이 넘었다. 굳은살이 박인 손이 세월의 더께를 말해준다. 엄 씨는 '돈은 빌려줘도 도장은 빌려주지 마라'는 말에 대해 "도장은 곧 그 사람의 분신이자 신표(信標)이므로 도장을 넘겨주는 것은 자신의 권리와 의사를 고스란히 넘겨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도장을 찍는 것은 계약의 완성이자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란 것. "5천원짜리 막도장 하나라도 일단 서류에 찍는 순간 동그라미 속 이름 석 자가 모든 것을 보증하는 것"이라며 도장을 새기는 것은 곧 죽어 있는 기물에 혼과 숨결을 불어넣어 도장 주인의 기운으로 발현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장에 새기는 글씨는 '좌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서 좌우가 뒤바뀐 모양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필력으로는 예술적인 글씨를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몇십 년을 노력해도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이들이 허다하다. 그런 면에서 엄 씨는 칼과 붓, 전'서각에 두루 능해야 하는 인장가로서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싸고 편리하게 컴퓨터를 이용해 기계 도장을 새기는 게 대세인 요즘에도 엄 씨는 대부분 손으로 새기는 '손도장'을 고집하고 있다. 도장이 도구이기 이전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예술 작품'이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계도장도 새긴다. 엄 씨는 기계도장을 새길 때도 기계 서체를 그대로 하지 않고 예술적 감각을 동원해 손으로 새기는 것과 비슷하게 해준다.

"편하기는 한데 예술적 운치와 인장가의 혼이 담기지 않은 도장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요. 좋은 도장은 찍으면 찍을수록 멋이 스며 나옵니다. 제 도장 덕에 일이 잘 풀렸다며 다시 찾아주시는 분들을 보면 보람을 느끼죠."

◆장애인가요제 대상…팬 많은 '젊은 오빠'

오후 6시가 되면 엄 씨는 도장포 문을 닫고 가수로 변신한다. 대구 북구 산격동 유통단지 내 한 라이브카페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도장포에서 보던 엄 씨가 아니다. 행복해 보인다. 청바지에 가죽점퍼, 선글라스, 목걸이, 젊은이 머리 스타일을 한 엄 씨는 낮에 본 인장인 엄 씨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한층 젊고 세련된 모습이다. '연예인'의 포스가 풍긴다. "이 시간은 저를 위한 시간입니다.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이고 제가 행복해지는 시간입니다. 손님들이 제 노래를 듣고 즐거워하고 행복해지면 저는 두 배, 세 배 더 행복해집니다."

음색이 곱다. 호소력이 있고 끌어당기는 맛이 있다. 목소리 또한 50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젊고 싱싱하다. 그래서 손님, 특히 40, 50대 여성 팬이 많다.

매일 오후 9시부터 9시 30분, 11시부터 11시 30분까지 두 타임 노래를 한다. 레퍼토리는 발라드부터 트로트, 팝까지 다양하다. 특히 김정호의 '하얀나비', 조용필의 '꿈', 비틀스의 '렛 잇 비' 등을 즐겨 부른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운동을 하거나 놀 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어요. 주로 앉아서 하는 일이고 취미였죠. 취미가 직업이 된 겁니다." 엄 씨는 1996년 KBS장애인가요제에 출전해 대상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옴니버스 앨범도 냈다. 장애인가요제 대상 수상 후 출연 제의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서예대회 최우수상 등 화려한 '필력'

즐겁게 노래하고 자정을 훌쩍 넘어 집에 오면 녹초가 된다. 그러나 엄 씨는 바로 잠자리에 들지 않는다. 붓을 잡는다. "몸이 피곤해 오래 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연습을 게을리하면 표가 나기 때문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도장포 덕인당에는 그의 서예 작품이 벽면 가득히 걸려 있다.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一勤天下無難事(일근천하무난사), 百忍堂中有泰和(백인당중유태화)'도 그의 작품이다. '근면하면 어려운 일이 없고, 항상 참는 집안에는 큰 화목이 깃든다'라는 의미다. 엄 씨는 영남서예대전 대상을 비롯해 영남미술대전 최우수상,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입선, 매일서예대전 특선 등 입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오전 8시에 일어나 낮 동안 일하고 밤에 노래 부르고, 자기 전 붓글씨 쓰다 보면 새벽 1시를 넘기기 일쑤다.

아침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바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엄 씨는 몇 년 전 천주교에 귀의했다. 사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깨달음을 준 결정이었다고 했다. "종교를 가지기 전과 후를 비교해 보면 많이 변했습니다. 나눔, 배려, 봉사 등이 화두죠. 앞으로 그런 삶 살 것입니다."

사진'박노익 선임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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