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협객(俠客)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누구일까. 조선 후기의 무예 교범인 '무예도보통지'를 저술한 백동수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정조대왕이 각별히 아꼈고, 당대의 비판적 지식인이었던 박지원, 이덕무 등과도 교유가 두터웠던 무인(武人)이었다.
1990년대 대구에서 전통 무예를 전파하며 '조선의 협객 백동수'란 책을 쓴 김영호 씨는 백동수에 대한 인물평에서 '협(俠)이라는 글자 하나에 일생을 걸었던 조선의 사내'로 압축하기도 했다. '협'이란 무력을 기반으로 하는 의로운 행동을 일컫는다. 따라서 '협객'이란 고단한 삶 속에서도 불의에 굴하지 않는 정신과 기개를 지녀야 한다. 폭력을 동원해 사회적 약자를 갈취하고 이권을 추구하는 속칭 깡패나 조폭 개념과는 격이 다른 것이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 '장군의 아들'이나 드라마 '야인시대'로 더 유명해진 김두한도 협객의 면모를 갖췄다.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는 이미지에다, 일제강점기 조선 상인 보호를 대의명분으로 내세운 주먹이었다는 점이 그렇다.
격동의 우리 현대사 이면에는 기라성 같은 주먹들이 한 시대를 풍미하며 명멸했다. 일제강점기의 김두한과 구마적. 신마적, 시라소니 등은 저마다 협객을 자처한 낭만파 주먹이었다.
그러나 광복 후 조선의 주먹은 정치 세력과 결탁해 이권을 챙기는 폭력 조직으로 변모한다. 속칭 '정치 깡패'이다. 자유당 정권의 2인자였던 이기붕과 손을 잡고 동대문사단을 일으킨 이정재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화룡, 유지광, 임화수 등의 주먹들이 활약한 것도 이때다. 그러나 일부 정치 깡패들은 5'16 군사정권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970년대에는 지방의 신흥 세력들이 중앙 무대를 장악하며 전국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조폭이 더욱 잔인하고 흉포해졌다.
'양은이파' '서방파' 'OB파'가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룬 가운데 부산에는 '칠성파'가, 대구에는 '동성로파'와 '향촌동파'가 있었다. 그러다 1990년대 '범죄와의 전쟁' 이후 점차 군소화되면서 기업화, 지능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조양은과 함께 조폭의 대명사였던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 씨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나면서 주먹 인생이 새삼 화제가 되었다. 기왕에 주먹이라면 낭만도 의리도 없는 깡패보다는 협객으로 남고 싶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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