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시민 사망 부른 빙판 골목길 가보니…

입력 2013-01-10 10:09:27

2주전 폭설에 2cm 얼음…주민 발걸음 휘청휘청

빙판길 낙상사고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9일 대구 중구 약전골목에서 한 주민이 망치와 송곳을 이용해 빙판의 얼음을 깨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빙판길 낙상사고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9일 대구 중구 약전골목에서 한 주민이 망치와 송곳을 이용해 빙판의 얼음을 깨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4시쯤 대구 동구 효목동 한국전력 동대구지점 뒷길. 지체장애 3급 신모(46'대구 동구 효목동) 씨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혼자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주말 사이 내린 눈이 한파에 꽁꽁 얼어붙어 골목길은 온통 빙판길로 변해 있었다.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던 신 씨는 그만 중심을 잃고 넘어져 머리를 부딪치고 의식을 잃었다. 곧장 인근 파티마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이달 7일 숨지고 말았다.

◆곳곳에 위험천만한 빙판길=9일 오후 동구 효목동. 이날 찾아간 사고 현장은 여전히 두께 2㎝ 정도의 얼음으로 군데군데 뒤덮여 있었다. 골목길을 나와 올라간 효목초등학교 뒷길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이면도로 절반이 딱딱하고 미끄러운 얼음판이었다. 인근 횡단보도도 얼음으로 덮여 있어 바닥을 보며 걸어야 했다. 자칫 잘못하면 교통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보행길이었다.

특히 사고현장 주변은 유치원, 초등학교, 경로당이 모여 있어 뼈가 약한 어린이와 노인들의 통행이 잦은 곳이었다. 이날도 겨울방학 방과 후 수업을 듣고 나온 어린이들이 빙판 위를 미끄러지며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었다. 효목초등학교에 따르면 겨울방학 동안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어린이는 200여 명으로 수많은 어린이가 빙판길 낙상사고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학교 관계자는 "처음 눈이 왔을 때 운동장은 햇빛에 눈이 녹을 거라 생각해 학교 앞과 통로 위주로만 제설작업을 했는데 눈이 얼어버려 운동장이 온통 얼음바다가 됐다"며 "제빙작업은 학교 직원만으로는 어려워 선생님들이 일일이 학생들을 학교 앞까지 데려다 주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말 폭설이 내리고 2주가 지났지만, 대구 시내 주택가 이면도로와 골목길, 인도 곳곳은 여전히 빙판길이다. 주민들은 빙판길 미끄럼 사고로 사망자까지 발생했는데도 행정기관이 제빙 작업에 손을 놓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주민 지영숙(77'여'동구 효목동) 씨는 "폭설이 내린 다음 날 노인보행기를 끌고 경로당을 가다 넘어져 발목을 접질려 한의원에서 치료받고 있다"며 "경로당에 오는 노인만 하루에 20여 명인데 경로당 앞 눈을 치우지 않아 이제는 빙판길이 돼 손 쓸 방법조차 없다"고 말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행정기관=대구시와 8개 구'군청도 골목길, 이면도로 등 사각지대 제빙작업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요 간선도로는 제설작업을 일찍 끝내 문제가 덜하였지만 빙판길이 된 사각지대는 공무원들이 수작업해야 하기 때문이다. 구청에 따르면 넓은 간선도로는 굴착기를 이용해 제빙작업을 하고 좁은 이면도로나 주택가 얼음은 삽과 곡괭이로 직접 얼음을 깨고 있다. 구청 관계자는 "이면도로 제빙작업은 주민센터가 맡고 있지만, 제빙작업에 나설 수 있는 인력은 한정돼 있어 모든 구역에 제빙작업을 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결국, 신고가 들어오는 지역을 중심으로 제빙작업을 하거나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내 집'상점 앞 눈 치우기' 에 시민들이 동참하기는 어렵다. 얼음을 깰 수 있는 삽이나 곡괭이를 비치하고 있는 주택도 드물뿐더러 일일이 제빙작업을 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주민 이모(86'여'동구 효목동) 씨는 "80이 넘은 노인이 엄동설한에 삽 들고 길바닥에서 집 앞 얼음을 깨라는 것이냐"고 했다.

게다가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나 상점 앞, 구석구석 골목길, 이면도로는 제설'제빙 작업에 발 벗고 나설 주민이 아무도 없다. 무작정 주민에게만 제빙작업을 떠맡기기 어려운 이유다.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홍욱선(62'동구 효목동) 씨는 "이면도로 얼음에 넘어져 다친 사람도 많고 교통사고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며 "우리 상점 앞 눈은 스스로 치웠지만 이면도로 얼음은 구청이나 시가 나서서 깨야 한다"고 말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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