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다들 행복의 나라로…

입력 2013-01-09 11:21:18

어느 방송사 프로그램인지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 '행복'을 다룬 다큐멘터리였다. 방송에서는 다양한 직업의 남성들이 등장한다. 유학파 출신의 고연봉자, 자영업자, 소도시의 공무원 등이다. 이들은 각자의 학력'직업'연봉 등이 적힌 프로필을 보고 '자신을 포함해 가장 행복한 것으로 판단되는 사람'의 순위를 매기라는 주문을 받는다. 1위는 고연봉자가 차지했다. 이후 다양한 설문, 인터뷰, 심리 분석 등이 이어졌다. 그중 기억나는 대목은 고연봉자와 공무원의 인맥과 가족 관계에 관한 것이다. 고연봉자의 인맥은 화려하지만 모두 업무와 얽혀 있다. 반면, 공무원의 인맥은 초등학교 동창, 조기축구회 중심의 서민적이었지만 일과 무관했다. 고연봉자는 기러기가족이고, 공무원은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고연봉자는 치열한 생존경쟁으로 스트레스가 엄청난 데 반해 공무원은 삶을 즐기고 있다. 서로의 삶에 대한 분석이 끝난 뒤 출연자들은 다시 '행복 순위'를 매겼다. 처음과 달리 공무원이 1위가 됐다. 애초 자신을 1위로 올렸던 고연봉자는 공무원을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꼽았고, 고연봉자를 1위로 꼽았던 공무원도 나중엔 자신을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판단했다. 니체의 말이 떠올랐다. '세상에는 우리의 침울한 두 눈으로 발견할 수 있는 이상의 행복이 있는 법이다.'

행복은 무엇인가? '가벼운 풀밭 위로 걷고 봄과 새들의 노래 듣고, 마음껏 울고 웃을 수 있으면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갈 수 있을까?'(한대수 노래 '행복의 나라' 노랫말 참조) 행복공식이란 게 있다. '행복=가진 것/원하는 것'. 이에 따르면 행복이 커지는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원하는 것이 많으면서 그에 따라 가진 것을 계속 늘리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원하는 것 자체를 줄이고 대신 현재 가진 것을 즐기는 방식. 여러분은 어떤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두 번째 방법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행복의 조건은 물질과 정신적 만족의 조화다. 행복은 소득에 비례하지 않는다.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Easterlin)은 1974년 '소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고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이론('이스털린의 역설')을 발표했다. 경제학자들은 '일정 수준의 소득'을 1인당 연간 2만 7천 달러(혹자는 2만 달러)로 보고 있다.

그럼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 2천 달러인 우리나라의 행복 수준은? 미국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이 지난해 148개국 15세 이상 국민 1천 명씩을 대상으로 일상생활에서 긍정적인 기분을 어느 정도 느끼는지 조사했다, 한국은 97위였다. 국민소득 90위인 파나마와 파라과이가 공동 1위를 차지했다. 2011년 OECD가 발표한 '행복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34개국 중 26위에 머물렀다. 한국은 일과 삶의 균형'소득'환경'보건'삶의 만족도 등에서 OECD 평균보다 1~2점 낮았다. 가장 취약한 항목은 '공동체 생활'. 평균 6.6점인데 한국은 0.5점으로 꼴찌다. 혈연과 이웃의 가치를 중시했던 우리의 공동체 결속력이 서구보다 취약하다는 점은 적잖은 충격을 준다. 우리는 고속 성장 아래 출세 지향, 무한경쟁으로 내몰리고 양극화, 불평등과 불균형을 경험하면서 공동체 의식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최근 '행복'이 지구촌의 화두가 되고 있다. 프랑스'영국'캐나다'일본'중국 등이 국민 행복 조사에 나섰다. 유엔은 지난해 4월 부탄을 모델로 세계 행복 보고서를 처음 발표했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지난해 취임 회견에서 '인민의 행복이 목표'라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출마선언 때 '행복'을 21차례 언급했다. 신년사에서도 '국민 모두가 행복한 100%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대구시교육청은 올 3월부터 전국 처음으로 중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행복 교육'을 한다고 했다. 아무튼 행복이라는 말이 넘쳐나니 그 이름만으로도 행복할 지경이다.

'국민 행복 시대'를 선언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대로 국민을 행복하게 해 주길 바란다. 재임 5년 동안 큰 성과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 줄 방법을 고민하고, 그 결과를 정책으로 이끌어내는 진정성을 보여주길 소망한다. '인간은 남에게 행복을 준 만큼 자기의 행복을 증대시킨다.' 벤덤이 남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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