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불문 '공짜 체험' 명과 암
소비자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미리 사용해보고 구입 여부를 결정하는 '체험 마케팅'이 뜨고 있다. 체험 마케팅 종목이 꽤 다양해진데다 제품이나 서비스 사용 외에 다양한 체험도 즐길 수 있다. 소비자는 요리조리 따져보고 즐거움도 얻은 다음 만족스러우면 그제야 지갑을 연다. 하지만 마케팅은 어디까지나 마케팅이다. 일부 체험 마케팅의 상술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따져볼 것도 적잖다.
◆체험 마케팅으로 지갑을 열어라
시식은 전통적인 체험 마케팅 종목이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에 가면 쉽게 접할 수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같은 종류의 제품 중 시식 행사를 하는 제품과 안 하는 제품의 매출 비중은 평균 7대 3 정도이고, 행사를 하면 보통 30% 정도 매출이 뛴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이 예나 지금이나 하루도 안 빠지고 시식 코너를 설치하는 이유다. 이외에도 화장품 샘플을 나눠주는 등 전통적인 체험 마케팅 종목이 무난한 효과를 입증하며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경기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소비자는 지갑을 여는 데 점점 신중해지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제품이나 서비스의 실질적인 '스펙'을 따지는 소비자가 많다. 이러한 분위기가 기존 체험 마케팅 종목에 속속 반영되고 있다.
아파트 분양을 할 때 이전에는 모델하우스를 따로 짓던 것을 실제 아파트 단지의 한두 개 층을 모델하우스로 꾸며 공개하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는 기존 모델하우스에서는 확인하기 힘든 조망권과 주변 녹지 공간 등 실제 주택 환경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서 아파트에 1박 2일간 직접 살아볼 수 있는 체험형 분양 마케팅도 나타나고 있다. 미분양 아파트가 늘면서 모델하우스로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난 이유도 있지만 과장광고로 인한 사후 분쟁을 막고, 경기 불황 탓에 소극적으로 변한 소비자의 마음을 이끌어내는 장점이 나오고 있다.
자동차 시승 마케팅도 단순히 차를 타보는 것을 넘어 일종의 감성 마케팅으로 바뀌고 있다. 차가 아빠만 타고 다니던 것에서 온 가족이 함께 타고 여행하는 용도로 바뀐 요즘 주5일 레저 트렌드를 반영한 마케팅이 많다. 캠핑 행사를 열어 온 가족에게 자동차 시승 기회를 제공하거나 전시장에 가족 단위로 시승 신청을 하면 가족형 텐트나 외식 상품권을 추첨해 주는 등이다.
◆체험 마케팅이 좌우하는 시장
체험 마케팅 종목도 다양해지고 있다. 새롭게 등장한 종목으로 가전이나 IT 제품이 많다. 늘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한데다 제품에 첨단 기술을 속속 도입하면서 소비자에게 체험으로 구매를 이끌어낼 만한 요소가 부각되고 있기 때문.
대표적인 것이 몇 년 전 '아바타' 등 3D 영화 열풍을 기반으로 등장한 3D TV다. TV 없는 집이 없는 시대에 대형 TV와 HD(고화질) TV로 소비자들을 유혹하다 이마저도 분위기가 시들시들해지자 업계에서 꺼낸 카드가 3D TV였다는 분석. 국내 가전업체들은 매장마다 3D TV와 안경, 그리고 푹신한 소파를 설치해 3D 입체영상 체험 마케팅에 힘을 쏟았다. 그러면서 경쟁력을 강화하더니 2011년 기준 세계 3D TV 시장 점유율을 보면 삼성전자는 34.1%(1위), LG전자는 13.4%(2위)를 기록했다.
요즘 이동통신회사들은 통신 속도 체험전(戰)을 벌이며 피를 튀기고 있다. LTE(롱텀에볼루션)나 와이파이 등 첨단 데이터 통신 기술이 속속 도입되면서 SKT'KT'LG유플러스 등 국내 이동통신회사들은 소비자가 매장에 와서 데이터 통신 속도를 측정할 수 있게 하거나 소비자 앞에서 비교 시연회를 여는 등 직'간접적인 체험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한 이동통신회사에서 속도 비교 수치를 공개하면, 곧장 다른 이동통신회사에서 반박하는 비교 수치를 공개하는 등 그야말로 전쟁 중이다. 업계에 따르면 데이터 통신 속도가 화두인 LTE의 국내 가입자 수는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1천500만 명이다. 앞으로 2G나 3G 등 구형 체제에서 LTE로 옮기는 수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여 선점 경쟁이 치열하다는 분석이다.
◆신상 체험 욕구 충족하는 체험관 유행
몇 년 전 플래그십 스토어가 크게 유행했다. 일반 매장과 달리 브랜드의 성격과 이미지를 한껏 녹여 넣은 일명 '얼굴마담' 매장이다. 주로 패션 브랜드에서 유동 인구가 많은 대도시 번화가에 대형 규모로 설치했다. 이와 비슷한 성격의 체험관이 요즘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카페인데 이에 착안해 체험형 매장에 카페를 결합한 체험관이 속속 나오고 있다. SKT는 기존 체험형 매장에 카페를 결합한 T월드 카페를 선보이고 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 소프트웨어 체험 공간을 카페 브랜드인 카페베네 매장에 마련하는 제휴를 했다.
체험관을 설치하는 이유는 신제품을 출시하기 전 제품 홍보는 물론 샘플을 구비해놓고 소비자의 반응을 미리 알아보려는 것이다. 상설 시장조사 공간인 셈. 이때 소비자를 힘들여 모으기보다는 소비자의 '신상(신상품) 체험' 욕구를 불러일으켜 알아서 모이게끔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자 욕구를 기반으로 상설 신상품 체험 제공 업체도 나타났다. 특정 브랜드의 체험관이 아니라 백화점처럼 다양한 브랜드 제품을 모아 체험을 제공한다. '샘플랩'은 연회비 2만원을 내면 매장 방문 시 신상품 샘플을 무료로 얻어 써 볼 수 있는 체험 매장이다. 20~40대 여성 소비자를 타깃으로 화장품이나 생활용품 체험을 주로 제공한다.
◆기업과 소비자 '윈윈' 체험단 인기
주부 박모(32) 씨는 최근 한 가전제품 브랜드의 김치냉장고 체험단에 응모했다가 탈락했다. 2천여 명의 주부 블로거가 응모해 10명이 파워 블로거로 선발됐다. 이들은 김치냉장고 체험기를 블로그에 올리는 것은 물론 스타 요리사의 김치 레시피 전수 등 다양한 문화 강좌를 듣고, 경품 응모 기회도 얻는 등 가사 이외의 '짬'을 활용해 활동할 예정. 아쉽지만 박 씨는 다른 가전제품의 체험단 응모를 알아보고 있다.
소비자 체험단을 모으는 기업도 많다. 홍보에 '고객과 함께'라는 취지를 더한 체험 마케팅이다. 주 대상은 주부와 대학생이다. 대학생들은 일종의 '스펙 쌓기'를 위해 체험단에 응모하고 있다. 아이디어를 제품에 적용하고, 기업의 실제 마케팅 업무를 체험하는 등의 활동을 펼친다. 활동비나 장학금도 받을 수 있다. 대학생 김준우(23'대구 달서구 이곡동) 씨는 "대외활동 경험을 쌓고, 구직 이력서에도 한 줄 넣을 겸 체험단에 응모하고 있다. 특히 대기업인 경우 체험단 활동이 해당 기업 입사 시 가산점으로 공식 인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면접 때 유리할 수 있어 대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많다"고 했다.
바이럴(입소문) 마케팅의 하나로 소비자를 일상 속 홍보대사로 만드는 체험단도 유행이다. 대표적인 것이 성형 체험 마케팅이다.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젊은 남녀에게 자신감을 심어준다'는 취지로 상담은 물론 성형 수술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곳이 많다.
각종 체험단 모집이 유행하면서 모집 정보를 모아 소개하는 웹사이트들도 등장했다. 한 웹사이트에서는 체험단에 선정되는 노하우를 정리해 내놨을 정도. 체험 수기를 풍부하게 만드는 동영상 제작 및 사진 촬영 실력을 연마해둘 것, 자신의 블로그를 접속자가 많은 인기 블로그로 미리 만들어 놓을 것 등이다.
◆'공짜 체험' 상술에 소비자 피해도
체험 마케팅이 일반화되면서 관련 소비자 피해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온라인 등에서 '일주일간 무료 체험 후 불만족 시 100% 환불'과 같은 문구를 보고 제품을 구입했다가 반품이 어려워 곤란해지는 경우가 생활 속에서 적잖다. 체험기간이 환불 신청 가능한 유효기간과 같다는 점을 제대로 공지하지 않아 소비자가 체험기간이 끝난 직후 환불을 요구할 경우 판매업체가 발뺌을 하거나, 사용 기간 연장을 끈질기게 권장하거나, 영세 판매업체의 경우 아예 연락 두절이 되는 경우 등이다. 모두 구입 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도심 상권이나 대학가 주변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화장품, 다이어트식품의 샘플 체험을 권유하면서 차량 등으로 데려가 고가의 제품을 판매하는 수법에 피해를 당하는 사례도 있다. 특히 경제관념과 법적 지식이 부족한 미성년자들을 '공짜 체험'으로 유인하는 경우가 많다. 계약 취소를 요구할 경우 판매자가 포장 훼손 등을 이유로 거절하거나 위약금을 요구하는 식이다.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소비자는 계약일로부터 14일 이내에 계약을 철회할 수 있다. 판매자는 물품 훼손이 아닌 내용물 확인을 위한 포장 훼손에 대해서는 계약 철회를 거부할 수 없다. 만 19세 미만 미성년자가 부모 동의 없이 구입한 경우 이를 증명하면 민법에 의해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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