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폐소생술로 어린 심장 구한 '하트 세이버'

입력 2013-01-04 09:43:34

인천 고잔중 교사 김애순 씨

'생명줄로 맺은 또 하나의 가족'. 심폐소생술로 한 생명을 살린 김애순 씨와 새 생명을 얻은 임세준 군이 만났다. 3일 대구 달서소방서에서 열린 하트세이버 수여식 후 세준이가 꽃다발을 김씨에게 건네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생명을 구하는 기적의 깍지를 아시나요?'

지난해 2월 29일 오후 대구 달서구 한 대형 목욕탕에서 꺼져가던 한 생명이 '기적의 깍지'를 통해 되살아났다. 물에 빠져 박동을 멈췄던 한 아이의 심장이 심폐소생술 덕분에 다시 '팔딱팔딱' 뛰기 시작한 것. 몇 분만 지체했더라면 다시는 해맑은 웃음을 볼 수 없을 터였다.

심폐소생술로 한 생명을 되살린 주인공은 인천 고잔중 교사 김애순(46'여) 씨. 대구 시댁에 다니러 왔다가 이날 딸과 함께 목욕탕을 찾았던 김 씨는 탕 내 작은 풀장에서 자맥질하는 아이를 보았다.

"처음엔 그저 수영을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움직임이 없는 겁니다." 아이는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사고였다. 그의 행동은 재빨랐다. 정신을 잃은 아이를 물 밖으로 끌어냈지만 심장이 뛰지 않았다. 양손으로 깍지를 낀 채 가슴 한복판을 재빨리 눌렀다.

그러기를 수십 차례. 마침내 심장은 다시 뛰었고, 아이는 물을 토해냈다. 잠시 후 119구급대가 도착했고 아이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다행히 아무런 후유증 없이 며칠 뒤 퇴원했다.

새 생명을 얻은 아이는 여섯 살 임세준 군. 가족들은 2월의 마지막 날을 두 번째 생일로 정했다. 엄마 우달아(39) 씨는 "병원에서 그때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았다면 아이가 지금 이 세상에 없거나 뇌가 손상돼 평생 장애를 앓을 수도 있었을 거라고 하더라"며 눈물을 삼켰다.

김 씨가 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심폐소생술 교육을 따로 받았기 때문. 대한적십자사 RCY 지도자로 활동하며 학생들과 마네킹으로 심폐소생술 연습을 수차례 했다.

김 씨에게도 세준이는 각별한 의미다. 2011년 가을 갑작스레 남편을 간암으로 떠나보낸 뒤 삶의 의욕을 잃었지만 세준이를 구한 뒤 생기를 되찾았다. 김 씨는 "누군가의 인생에 작은 도움이 됐다는 것만으로도 내 상처가 많이 치유됐다"고 활짝 웃어 보였다.

3일 오전 대구 달서소방서 3층 강당에선 '하트 세이버'(Heart Saver) 시상식이 열렸다. 심폐소생술로 시민의 생명을 구한 소방관들에게 주는 상. 김애순 씨도 '심장 지킴이'로 상을 받았다. 김 씨의 이름이 불리자 꽃다발을 손에 든 세준이가 뛰어나가 품에 와락 안겼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급성 심정지 사망은 교통사고 사망자의 5배나 된다. 하지만 김 씨처럼 목격자가 심폐소생술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경북대병원 응급의학과 류현욱 교수는 "설문조사 결과, 심폐소생술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5% 남짓이며, 방법을 알아도 행여 환자가 잘못 될까 봐 시도하지 않는다"며 "남을 도우려다가 문제가 발생해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선한 사마리아법'을 아는 시민은 열 명 중 한 명꼴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심폐소생술을 보다 확대하기 위해 대구시는 민'관'학이 함께하는 '심장살리기 대구운동본부'(가칭)를 올해 안에 발족할 계획이다. 보다 실질적인 교육을 통해 심정지 환자를 살리자는 것.

대구보건대 간호학과 송소현 교수는 "정확한 심폐소생술 방법을 알려주고 위급한 상황에서 누구나 '하트 세이버'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훨씬 더 많은 생명을 살릴 것"이라고 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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