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활의 고향의 맛] 금강산 건봉사에서

입력 2013-01-03 14:03:35

네 개의 기둥을 가진 일주문이 반갑게 맞아

그 당시 금강산 구경은 그림의 떡이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남과 북은 휴전선 이쪽과 저쪽에 철조망을 쳐두고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다. 하늘을 나는 새나 넘나들 뿐 덩치가 큰 짐승들도 넘어선 안 될 선을 넘다가는 자칫 지뢰를 밟아 죽는 수가 허다했다. 꽁꽁 막혀 있는 비무장지대를 무슨 수로 넘어가 금강산 유람을 한단 말인가. 생각 자체가 허튼수작일 뿐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대학에 진학하여 산악부에 들어갔다. 금강산 유람이 불가능하다면 꿈을 더 키워도 손해 볼 게 없다는 객기가 발동했다. 제2호 버킷을 개마고원을 거쳐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끼고 우리 민족의 영산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으로 잡았다. 이것 역시 실현 가능성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렇지만 '청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는 말이 영 헛소리만은 아닐 것 같아 나 나름대로 버킷을 품고 사는 재미는 그런대로 쏠쏠했다.

꿈의 금강산이 현실로 돌아온 것은 40년 뒤인 1998년이었다. 산악인 몇몇과 배낭을 꾸려 봄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외금강 코스인 구룡폭포, 귀면암, 상팔담, 천선대, 망양대 등을 오르는 호사를 누렸다. 세 번째는 외금강이 아닌 내금강 코스로 들어가 산정무한에 나오는 장안사 터와 표훈사 보덕암 묘길상 등을 둘러봤다. 덤으로 해금강과 삼일포까지 돌아봤으니 금강산에 대한 소원은 제대로 푼 셈이다. 그리고 백두산도 2002년 서파 코스 종주를 했으니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릴 적 꿈은 그런대로 이룬 편이다.

옛날에도 문인묵객을 비롯하여 승려들과 벼슬아치들까지 금강산 유람하는 것을 정신적 사치로 여겼다. 어떤 이들은 몇 개월씩 머물며 수묵 산수화를 그리기도 하고 문인들은 이름난 명소에서 시와 글을 지었다. 지금도 겸재의 화첩을 들춰보면 만폭동, 구룡폭포, 삼일포, 해금강, 총석정 등 금강산의 빼어난 경치들이 멋진 풍경으로 화선지 위에 재현되어 있다. 그리고 칠칠이라 불렸던 최북이란 화가가 외금강 구룡폭포를 보고선 "비로소 내 죽을 자리를 보았다"며 바로 폭포 아래로 몸을 던진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나는 지금도 금강산에 대한 감동과 감흥이 너무 커 세 번을 다녀오고도 단 한 편의 글도 쓰지 못했다. 감동은 곧잘 주눅과 연결된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간에 마음을 터놓는 만만하고 친근한 사이라야 장난질과 농담이 통하는 법이다. 상대의 기가 너무 세거나 카리스마가 너무 대단하여 압도당하고 나면 말문과 글문이 한꺼번에 막히는 법이다. 그것을 '주눅이 든다'고 흔히 표현하는데 운동경기에서도 이 같은 현상은 자주 빚어진다.

사실 나도 금강산이란 말만 들어도 주눅이 드는 편이다. 지난번 토요산방 도반들과 강원도 고성에 있는 금강산 건봉사엘 간 적이 있다. 건봉사는 휴전선 부근 금강산 자락에 있는 명찰이다. 한때는 설악의 신흥사와 백담사, 그리고 양양의 낙산사까지 말사로 거느린 위엄 있고 거대한 절집이었다. 그런데 건봉사는 한국전쟁 통에 폭격을 당해 그야말로 폭삭 내려앉은 비운의 사찰이었다. 금강산에는 장안사 신계사 등 이름난 명찰들이 전쟁 속에서 잿더미로 변해 지금까지 복원 내지 중창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곳이 부지기수다.

건봉사는 그동안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묶여 있다가 1988년 해제된 후 출입이 자유로워진 곳이다. 절 입구에 도착하니 팔작지붕을 머리에 이고 있는 네 개의 다릿발을 가진 일주문이 우리를 반갑게 맞는다. 통상 일주문은 두 개의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한 가지 묘한 것은 한국전쟁 통에 건봉사의 모든 건물이 형체 없이 날아가 버렸는데도 네 개의 다리로 버틴 일주문만은 거뜬하게 살아남아 그날의 기억을 전해주고 있다. 그러고 보니 '스포츠의 기본은 다리 힘'이라더니 사찰을 지탱하는 힘도 역시 마찬가진가 보네.

전쟁의 정의는 '적 아니면 나, 중간이 없는 것'이다. 금강산이란 명산 자락에 있던 명찰인 건봉사도 남과 북이란 중간 지점에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이런 참화를 입었다니 참으로 안타깝다. 전쟁은 난폭한 교사다.(The war is violent teacher.) 난폭한 교사는 전쟁을 통해 평화를 가르치는 법인데 북한이 알아 들었으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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