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화한 도시에서도 늘 혼자인 사람들…『뤼미에르 피플』

입력 2012-12-29 16:13:03

뤼미에르 피플/ 장강명 지음/ 한겨레 출판 펴냄

굉장히 못생긴 사람이 있다고 하자. 다 컸는데 키가 138㎝ 정도밖에 안 되는 여자여도 좋고, 코가 흉측할 정도로 비뚠 여자여도 좋고, 심하게 튀어나온 이 때문에 어떤 남자의 관심도 받아본 적이 없는 여자여도 좋다. 아니면 뭐를 해도 되는 일이 없어서 늘 우거지상을 하고 다닐 수밖에 없는 남자여도 좋다.

그렇게 못난 여자와 남자는, "못생겼다, 너무 못생겼다" 는 소리를 하도 들어서 사람들 앞에 좀처럼 나서지 못한다. 이제는 머리카락이나 목도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닐 지경이 된 못생긴 사람 앞에 누군가 속삭인다.

"괜찮아. 정말로 괜찮아." 그리고 "너는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잖아, 그러니까 너는 괜찮은 사람이야" 라고. 장강명의 연작소설 '뤼미에르 피플'은 그런 소설이다.

이 작품은 서울 도심 한복판 뤼미에르 오피스텔 801호부터 810호까지에 각각 틀어박혀 사는 주인공들을 등장시켜 도시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 10편을 끄집어 낸 것이다. 때로는 환상적이고 때로는 인간적이고, 때로는 아이 혹은 어른 같고, 때로는 언어가 있고 없는 사람들…. 작가는 이들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도시적 삶의 실체를 보여준다.

기자 출신인 작가는 뤼미에르 빌딩 오피스텔에 입주해 사는 남녀 군상들의 삶을 박쥐인간, 모기, 명견패스, 마법매미 같은 비유를 통해서 보여준다. 은유적인 이야기임에도 한 편 한 편의 묘사가 매우 구체적이고 흥미롭다.

작가는 지지리도 못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본다거나, 그들이 이 세상에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는 보통 시민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도 않는다. 그저 뤼미에르 오피스텔 입주자들의 삶을 그려낼 뿐이다.

"이 소설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좀 기괴하기는 해도 내가 '르'메이에르 3차 빌딩'과 그 주변을 사랑한 흔적이다. 삶을 긍정하는 사람은 자기가 사는 동네를 사랑하게 되고, 결국에는 자기 동네에 대한 글을 쓰거나 노래를 짓거나 그림을 그리게 된다. 그 역도 성립한다. 나는 청담동도 홍대 앞도 아닌 신촌을 다소 연민의 감정을 품고 사랑했다. 신촌은 마치 "너는 못생겼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다니게 된 여인 같았다. 나는 서툰 솜씨로나마 그 여인에게 진한 스모키 화장을 해주고 검은 드레스를 입혀 주고 싶었다." 작가의 말이다.

한 남자가 있다. 그는 가만히 있을 때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그는 누군가와 비교될 때, 어떤 업적을 이루었을 때, 목표를 세우고 달려갈 때 존재감과 행복을 느낀다. 학창시절 그의 행복은 각종 시험과 반장선거, 학력고사, 학점, 토익점수였고,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취업, 근무평점, 업적평가, 승진심사 같은 거였다. 때로는 금연이나 체중관리 같은 생활습관 교정의 성공도 그를 행복하게 했다.

그는 행복해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심지어 백두대간 종주를 하면서도 영어 단어와 중국어 단어를 외웠다. 그래서 끝내 성취했고 행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큰 프로젝트를 최종적으로 성공시킨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떴으나 일어날 수 없었다. 목 아래 사지가 마비돼버린 것이다. 의식은 멀쩡한데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아내와 아이는 영어 연수를 받기 위해 캐나다로 가고 없다. 성공한 그는 아무도 찾아올 사람이 없는 자기만의 공간 뤼미에르 오피스텔 802호에서 그렇게 홀로 죽어간다. 도대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한 여자가 있었다. 아이는 예뻤지만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녀는 또래의 불량학생들과 어울렸고,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선금 500만원을 받고 룸살롱 아가씨가 되었다. 그 돈으로 대입학원에 다닐 작정이었다. 두 달 만에 선금 500만원을 다 갚았지만 룸살롱을 그만두지 않았다. 여자는 처음에는 룸살롱 홀에 필요한 의상을 샀고, 나중에는 평상복을 샀고, 다음에는 가방과 구두를 샀다. 그리고 동거남과 손님 이외에 다른 남자와도 잠자리를 같이했다. 여자는 원래 동거남을 따라 캐나다에 가고 싶었고, 이민 가산점을 얻기 위해 대학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캐나다도 대학도 결국에는 잊어버렸다.

자살하기 전에 여자는 깨달았다. 남자와 여자가 왜 결혼을 하는지, 왜 아이를 낳는지, 어디든 더 좋은 곳으로 나아가려고 하는지…. 목표를 잃어버린, 그래서 살아갈 이유가 없어진 그녀는 22층 뤼미에르 빌딩 옥상에서 뛰어내린다. 최종 목표를 향해서! 그러나 그녀의 최종목표였던 자살은 실패로 끝난다. 왜냐고? 인생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으니까.

356쪽, 1만2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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