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활의 고향의 맛] 맹인나라에선 애꾸가 왕

입력 2012-12-27 14:23:22

평화의 댐, '욕망의 페달'이 만든 성 같은 존재

'군주론'에서의 몇 구절이 생각난다. '군주는 모든 좋은 성품을 구비할 필요는 없다. 구비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군주가 그러한 성품을 갖추고 늘 가꾸는 것은 해롭지만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

가을비 내리는 산길을 달린다. '평화의 댐'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평화의 댐은 말로만 들었지 가보지 못한 곳이다. 내게 있어 그곳은 육지 속에 은밀히 감춰져 있는 미지의 섬이었다. 평화의 댐은 욕망의 자전거에 앉아 페달을 힘껏 밟고 있는 사람들이 우악스럽게 만든 성(城) 같은 존재였다. 이런 얄팍한 상식이 내 마음 속에 걸려 있는 깃발처럼 항상 흔들리고 있었다.

사실이 그랬다. 평화의 댐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정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응 조치의 일환으로 장세동 안기부장의 주도 하에 기획된 거대한 물막이 공사였다. 이유도 그럴듯했다. 북한이 금강산댐을 붕괴시켜 엄청난 양의 물을 하류로 내려 보내면 '서울의 63빌딩 중턱까지 물이 차오르게 되며 북한은 이를 악용해 88올림픽까지 방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맹인들 나라에선 애꾸가 왕'(In the country of the blind, the one eyed man is king)이란 말이 있다. 수공(水攻)이 무엇인지, 댐에 갇힌 물이 아래로 쏟아질 때의 위력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백성들은 정부의 엄포에 주머니를 털었다. 심지어 어린이들까지 그들이 갖고 싶은 것을 가지려고 꿈을 퍼담던 돼지저금통까지 물 폭탄 공포에 질려 평화의 탑 앞에 헌금으로 내 놓았다.

애꾸 왕은 두려움 때문에 갖는 존경의 법칙과 '어둠이 빛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악용하여 공사 대금의 상당 부분을 국민성금으로 대체했다. 물론 모금 과정에 횡령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고 댐의 위치 선정은 한국전력 직원 1명의 독단으로 정해지는 과오도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댐의 규모와 저수량 산정에 큰 착오가 빚어져 설계변경과 재시공으로 엄청난 예산을 낭비해가며 겨우 마무리 지은 것이다.

이로 인해 애꾸 왕이 시민단체들로부터 사기와 공갈 혐의로 고발당했으나 권력의 시녀 격인 사법부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댐 건설을 지지하고 공사 계획에 참여했던 선우중호 서울대 총장은 북한의 수공 위협이 과장되었음이 밝혀지자 학생들에게 사과하기도 했다.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정치인의 필독서인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의 몇 구절이 생각난다. '군주는 모든 좋은 성품을 구비할 필요는 없다. 구비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군주가 그러한 성품을 갖추고 늘 가꾸는 것은 해롭지만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 단순하게 말하면 정치가가 지켜야 할 자질은 속임수가 첫째이니 속이지 않는 것처럼 속이는 것을 밥 먹듯이 하라는 그 말이다. 지난 대선 선거운동에서도 마키아벨리 선생의 말씀을 네가티브 전략으로 원용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열심히 따르는 후보들을 보았다.

앞서 '두려움과 존경'의 법칙을 말한 적이 있다. 두려움은 항상 처벌에 대한 공포로 유지되기 때문에 정권을 지키는 데는 백성들에게 두려운 의식을 심어주는 게 필수다. 마키아벨리는 다시 말을 이어간다. "권력자는 두려움을 느끼는 자보다는 사랑을 원하는 자에게 주저 없이 위해를 가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이해타산에 밝기 때문에 이익을 취할 기회가 있으면 사랑 같은 것은 헌신짝처럼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위정자는 무턱대고 민주적으로 하려 들지 말고 짓누르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그러고 보니 평화의 댐을 기획한 애꾸 왕 일당들도 군주론은 읽었나 보네.

추적대는 비를 맞으며 평화의 댐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산길은 노란 은행잎들이 융단처럼 깔려 있었다. '두 눈은 아름다운 낯선 풍경에 경이롭게 취해가고 있었지만 머릿속에서는 한때는 대국민 사기극이었다는 지탄을 받았던 평화의 댐에 관한 묘한 아이러니가 지워지지 않고 계속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두 번에 걸친 공사를 통해 길이 601m 높이 125m 저수량 26억3천만t의 댐으로 거듭나 북한의 수공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재평가 작업이 거론될 정도이다. 그러니까 평화의 댐의 공은 마키아벨리 선생의 덕인지 애꾸 왕의 혜안(?) 덕인지 좁은 소견으론 알 길이 없다.

"현명한 군주는 신의를 지키는 것이 불리하게 작용할 때 그 약속을 지켜선 안 된다. 인간이란 원래 신의가 없기 때문에 당신 자신이 그들과 맺은 약속에 구속되어선 안 된다." 정치하는 인간들의 공약(公約)이 한갓 공약(空約)으로 끝나는 이 허망함의 당위가 군주론이란 책에 이미 기록되어 있었으니 속이고 속는 게임은 영원으로 이어질 것 같다. '맹인나라에선 애꾸가 왕'이란 말은 진실에 가까운 사실이다.

구활(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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