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남희의 즐거운 책 읽기]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입력 2012-12-27 14:25:41

파커 J.파머/ 글항아리

# 민주주의를 위한 마음의 습관

# 공동체에서 활동하고 성찰하는 기회 많이 가져야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투표에 참여하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후원하고, 선출된 공직자에게 쟁점에 관한 의견을 표명하는 이상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미국을 대표하는 교육지도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파커 J. 파머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읽었다. 저자는 일그러진 영웅이 되어버린 미국의 자화상을 직시하면서, 원초적인 건국 정신을 추적한다. 국가를 창설했던 주역들의 성취와 한계를 확인하고, 초기 민주주의의 신선한 역동성을 떠올리며, 애당초 미국이 꿈꾸었던 세계를 간절히 열망한다.

저자는 민주주의는 끝이 없는 실험이고, 그 성과는 결코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 대신, 우리는 사적 영역으로 숨어들어 오로지 자신의 개인 생활을 개선하는 데 집중한다. 그 결과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지고, 거기서 생겨난 공백을 비민주주의적인 힘이 채우려고 한다.

"우리는 자신이 살고 일하는 장소에서 시민 공동체를 창조할 때 비로소 우리를 다스리는 이들을 견제하고 바로잡을 힘을 쥘 수 있다. 그렇게 해야만 국민의 목소리가 형성될 수 있고, 제도적인 정치 권력의 공간에서 그 목소리가 들릴 수 있다."

지역의 이웃, 도시의 가로와 골목, 공원과 광장, 카페와 커피숍, 박물관, 도서관, 학교, 직장, 디지털 소셜 미디어. 이런 종류의 공적인 공간에서 시민의 활발한 상호작용이 계속될 때에 민주주의는 계속 발전할 수 있다. 사생활과 정치적인 삶의 비좁은 범위를 넘어서 시민 공동체를 경험하는 것이다. 하지만 도시의 거리를 쇼핑몰이 대체하고, 경쟁에 쫓기는 생활이 삶의 여유를 빼앗으면서 공적인 삶은 심각할 정도로 쇠퇴하고 있다. 파머는 공적인 삶을 갱신하기 위해 환대의 공간을 물리적으로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웃과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사회적 공간을 자발적이고 의식적으로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다.

파머는 인간의 마음이 지닌 보이지 않는 역동과 그 역동이 형성되는 가시적인 삶의 현장을 주목한다. 각자 안에 존재하는 마음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고 우리가 서로에게 이웃임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갈등을 끌어안을 수 있다. 우리 안의 차이를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방향으로 끌어안는 법을 배울 때 갈등이 민주주의의 적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엔진으로서 더 나은 사회의 가능성으로 우리를 계속 이끌어간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 국가의 새로운 삶으로 통하는 출구다.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자아,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상호의존적인 자아는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시민에게 자신을 성찰하고 마음의 역동을 다루는 기회를 풍부하게 제공할 때만 형성된다. 우리는 많은 쟁점에서 언제나 이견을 드러내야 하며, 동의하지 않을 자유는 민주주의의 위대한 힘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증오해서는 안 된다.

어떤 민주주의든 그것이 살아남는 데 근간이 되는 '마음의 습관'을 키워야 한다. 우리는 그런 마음의 습관을 가족, 동네, 교실, 일터, 종교공동체 또는 다른 자발적 결사체 등에서 가르치고 배울 수 있다. 일상 생활의 장소들 그리고 그 안에서 형성될 수 있는 민주적인 마음의 습관은 민주주의의 보이지 않는 인프라를 구성한다. 그것이 건강하게 유지'보수되어야 민주주의가 잘 작동한다.

파머는 막막한 현실에 틈을 내고 새로운 삶의 질서를 창조해내는 비전과 전략을 제시한다. 그는 공동체의 꿈을 위해 가슴 설레면서도 객관적 세계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마음의 힘을 신뢰하면서도 인간 본성의 어두운 심연을 놓치지 않는다.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은 미국의 현실 속에서 비통함을 넘어 민주주의를 살아있게 하고 번성하게 하려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노학자의 깊은 고뇌와 성찰이 담겨 있다.

신남희(새벗도서관 관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