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나는 21세기 실크로드<제2부>] 22. 실크로드 여정

입력 2012-12-26 07:45:49

"여행은 떠나는 일" 또 다른 신비 찾아 서쪽으로…서쪽으로…

현장과 혜초가 걸었고 대상의 낙타행렬이 오갔던 실크로드. 지금은 직선으로 뻗은 포장도로에 한국산 소형차가 달리고 있다.
현장과 혜초가 걸었고 대상의 낙타행렬이 오갔던 실크로드. 지금은 직선으로 뻗은 포장도로에 한국산 소형차가 달리고 있다.
실크로드가 통과하는 중앙아시아 각국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간직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의 천산산맥 지류에 있는 알알차 자연공원.
실크로드가 통과하는 중앙아시아 각국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간직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의 천산산맥 지류에 있는 알알차 자연공원.
고대도시 히바의 성문 입구에 있는 칼타 미나렛. 미완성이지만 아름다운 색상의 첨탑으로 유명하다.
고대도시 히바의 성문 입구에 있는 칼타 미나렛. 미완성이지만 아름다운 색상의 첨탑으로 유명하다.
부하라의 칼란 모스크에서 수염을 길게 기른 한 무슬림 노인이 두 손을 모으며 기도하고 있다.
부하라의 칼란 모스크에서 수염을 길게 기른 한 무슬림 노인이 두 손을 모으며 기도하고 있다.

신라는 로마로 통했다. 경주에서 이스탄불까지는 약 3만6천800리로 하루에 100리씩 걸으면 꼭 1년이 걸리는 셈이다. 해외여행이 일반화된 지금 거리상으로 멀다고도 가깝다고도 할 수 없는 거리이다. 다만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경유지 국가들의 지난 정치적 상황으로 봐서 우리가 느끼는 심리적 거리는 서유럽 등지보다 훨씬 먼 곳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독립을 성취한 각각의 나라들은 실크로드의 전성기가 다시 온 것처럼 바깥세상과의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한국과 중앙아시아를 하늘길로 왕복하는 정기직항편도 날아다니고 닫혀 있던 육로의 국경도 여러 곳 개방돼 숨통이 트이고 있다.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처럼 '하늘은 울타리를 치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난다. 과거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중앙아시아 각국을 육로로 연결하는 실크로드 횡단 개인여행도 가능해졌다. 고난의 길로 여겨지던 실크로드 여행이 요즘처럼 우리들 곁에 가깝게 다가온 것도 역사상 처음일 것이다.

지난해 봄,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 즉 지금의 서안을 방문했었다. 현장법사의 불경이 안치된 대안탑 앞에서 향을 피우고 멀고 먼 실크로드 여정의 무사함을 기원했다. 신라의 혜초 스님도 인도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장안으로 돌아와 탑 앞에 섰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곳은 신라와 실크로드의 연결점이었다. 고구려 멸망의 원인은 지나치게 힘을 숭상하고 전쟁을 선호한 데 있었다. 반면에 탁월한 외교력으로 국제교류를 펼친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하고 오랫동안 왕조를 유지했던 그 의미는 소중하다. 이제 천 년 전 실크로드의 동방종착지 경주가 21세기 새로운 출발지가 되어 드넓은 문화의 고속도로를 열어나가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경주엑스포는 한국을 대표하는 빛나는 문화 명품이 되기 위해 세계의 다른 문화와 끊임없이 만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2013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아시아 문화를 넘어 동서양 문명의 교차로인 터키 이스탄불에서 유럽문화와 만난다. 과거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지금의 이스탄불이다. 즉 당시 실크로드의 서쪽 종착지였다. 경주와 이스탄불의 만남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역사적으로 두 지점을 연결했던 경유지에 대한 재조명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곳에 위치하는 많은 국가들과의 소통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터키가 함께하는 대실크로드 국제교류벨트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실크로드는 중국과 유라시아를 관통한 실크로드의 동쪽 구간, 즉 한반도로 이어지는 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우리의 역사적 위상이 제대로 복원된다. 알타이어족의 천산산맥을 한반도 백두대간에 연결시키고, 그 끝자락에 있는 '경주 다시보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곳은 아직 뜨거운 사막의 땅이고, 모래 속에는 부침한 수많은 문명과 또 그 문명을 일군 주인공들이 미라로 잠들어 있다. 풀 한 포기 없는 메마른 땅이고, 구도자만이 모진 고행을 자초하는 뜨거운 모래벌판이다. 그랬던 그곳엔 새로 유정, 철광, 탄광이 발견되어 신도시가 쭉쭉 뻗어 있고 전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가만히 눈감고 상상해본다. 세계 각국은 고속전철 공사를 서두르고 있다. 대구에서 KTX급 고속철을 타고 중국과 유라시아 대륙을 거쳐 로마까지 단숨에 달려가는 꿈은 이루어질 것이다.

일정에 따라 순례를 마치면서 생각해보니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왔던 중국 대륙에 비해 중앙아시아는 양반이었다. 아름다운 설산과 신비의 호수, 찬란한 타일 건축술을 자랑하던 이슬람 사원들, 사진도 참 많이 찍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달리는 차창을 통해서 또는 늦은 밤에도 셔터를 눌렀다. 이번 여정은 철저하게 육로를 고집했기 때문에 더 많은 풍물을 접할 수 있었다. 하루에 약 2천여 커트를 기록하며 피사체에 감동하고 자연에도 감사했다. 총 4만여 커트의 디지털 자료가 축적됐다. 인생은 짧고 사진은 영원한 것인가.

'실크로드'.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것은 화려한 역사 속의 유적들이 광활한 초원과 오아시스에 꽃 피웠던 삶의 향기 때문이다. 여행은 떠나는 일이다. 그래서 또 다른 문명, 또 다른 신비를 찾아서 오는 봄에도 유목민처럼 더욱 서쪽으로 나아갈 계획이다. 구도자라는 느낌으로 결국은 자신을 알기 위해서일 것이다. 실크로드 여행은 계속된다.

글'사진: 박순국(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sije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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