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다큐] '나눔 속의 행복' 남세현·김정숙 부부
토요일 오후. 쓱쓱…싹둑 싹둑…주방이 부산하다. 남편이 콩나물과 대파를 씻는 동안 아내는 양파와 무 썰기에 바쁘다. 대구 수성구 범물동에 사는 남세현(55'온누리화학 대표)'김정숙(51'보험업) 씨 부부. 이들은 토요일 오후를 늘 이렇게 보낸다. 휴일 아침 노숙인들에게 무료 급식 봉사를 위해서다. 올해로 16년째다.
주방 뒤 베란다에 마련한 2개의 대형 찜통에선 먼저 손질해 넣은 쇠고기가 몇 시간째 끓고 있다. 준비한 재료를 마저 넣는다. 한우로 끌인 국물이 오늘따라 구수하다.
다음 날 오전 3시, 서둘러 이부자리를 걷었다. 밤새 끓인 쇠고기국이 진국이다. 남편은 저녁에 썰어 둔 대파를 넣고 막바지 불을 올린다. 아내는 서둘러 압력밥솥에 쌀을 안친다. 밥은 150명 분. 2대의 대형 밥솥으로 두 번 지어내야 하기에 새벽이 짧다.
오전 6시, 밥과 국을 준비해 지하철 대구역 노숙인급식센터에 왔다. 어둠 속에서 자원봉사자들이 하나둘 나타난다. 노숙인들이 추위에 얼굴만 빼꼼히 내민 채 벌써 줄을 지었다. 급식은 오전 6시부터 두세 시간 동안 계속됐다.
16년 전 남 씨 부부는 우연히 봉사 활동차 노숙인급식소에 따라갔다가 '일요일은 밥 주는 곳이 없다'는 말에 우리가 해보자며 마음을 냈다. "당신 제정신이냐"며 아내가 반발했다. 그 무렵 남 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시작한 사업이 망해 절망의 늪을 해매던 때 였다. 자살할 생각으로 아파트 옥상에 올라 한참 세상을 원망했다. 그런데 멀리 희미한 도심 불빛이 오늘 따라 희망의 빛으로 다가왔다. "난 노숙인들보다 형편이 좋잖아…".
용기를 얻어 사업을 재개했다. 전국으로 영업하며 하루 900km를 달린 적도 있다. 휴일엔 노숙인들을 찾아가 급식 봉사를 이어갔다. 피곤할 땐 내가 쉬면 누군가는 굶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게도 아내와 두 자녀도 동참했다. 처음 컵라면으로 시작해 김밥으로 또 덮밥으로 바꿨다. 하다보니 국밥이 최고란 걸 알았다.
그러길 몇 년 뒤, 사업에 또 부도가 났다. 사기 당해 돈도 많이 떼였다. 큰 빚도 졌다. 당장 먹고살기 어려웠다. 빚독촉 우편물이 수시로 날라왔다. 전기료를 못내 단전도 잦았다. "엄마 화장실에 왜 물이 안나와?" 영문도 모르는 아이의 말에 가슴이 메였다. 절박했다. 아내가 몸이 아파 병원에 갈 때는 보험금이 생각나 '암이라도…'하는 못된 생각까지 했다. 급식은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그때 가족과 형제가 그렇게 큰 힘이 될 줄 몰랐습니다." 남 씨 부부는 위기의 순간을 가족 사랑과 형제애로 극복했다고 회상한다. 노숙인과 함께하며 자녀들의 인성이 밝아졌다. 아내는 어려움을 이겨내는 지혜를 배웠다. 나눌수록 가정에 행복이 쌓였다. 형제들도 물질보다 사랑으로 더 뭉쳤다. 서로에게 용기를 줬다. 지금도 어려움이 있으면 서로 발벗고 나선다. 이젠 집안 대소사보다 급식 봉사를 더 배려해 준다.
남 씨 부부는 급식 중단 9개월 만에 다시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최근엔 사업이 안정돼 빚도 많이 갚았다. 당시 학원은 엄두도 못냈지만 아이들이 잘 자라줘 고맙다. 스스로 장학금을 벌어 중국 절강성에서 의대를 다니는 둘째 아이는 의료봉사 활동에 심취해 있다. 남 씨 부부는 그동안 부쩍 늘어난 자원봉사자들을 모아 비영리법인 '하담봉사단'을 꾸려 휴일 급식 봉사를 이끌고 있다.
유난히 추운 겨울이다. 노숙인도 봉사자도 추위가 가장 힘들다. 지금도 대구역 뒤편에선 노숙인들이 찬바람을 맞으며 맨땅에 앉아 식사를 한다. "따듯하게 먹을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남씨 부부의 작은 소망이다. 사진'글 김태형기자 thkim21 @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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