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추운 겨울에, 한 여인이 바닥에 누워 있다. 처절한 슬픔의 표현인 것 같기도 하고, 나른한 오후의 한 장면인 것 같기도 하다. 그 여인에겐 다가가 쓰다듬어주고 싶은 끌림이 있다. 물론 쇠줄이 입혀진 조각이긴 하지만 말이다.
갤러리 분도에서 열리고 있는 박승모 조각 전시는 일상의 사물에 독특한 표정을 입힌다. 작가는 실제의 여인, 악기 등 사물의 본을 뜬 후 여기에 금속성 줄을 감는다. 철사를 돌려 감은 작업은 특유의 입체감이 살아나는 환조로 완성된다. 단단한 금속성 줄을 끝없이 돌려 감은 결과, 원래의 사물은 쇠줄 속에 갇힌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육체, 그리고 단단하고 차가운 쇠줄이 맞부딪히는 이미지의 혼돈을 관객들은 즐길 수 있다.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대상을 선택했다는 것도 눈에 띈다.
아슬아슬한 몸의 경계, 어느 한 끝이 풀려버리면 세상과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껍데기와 본질조차 사라져버릴 것 같은 위태로운 느낌도 품고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작가는 색소폰, 콘트라베이스, 수자폰 등도 조각으로 만들었다. 한없이 넓은 공간으로 확장되는 소리의 이미지와, 가두어진 악기의 이미지가 상충하면서 오묘한 빛깔이 만들어진다.
입체 작품 외에도 철망을 여러 겹 겹친 후 회화적으로 표현한 설치작품도 선보인다. 열 겹 이상의 철망은 미묘하게 조작되어, 입체감이 도드라진 작품이 완성된다. 명암이 이루는 환영을 표현한 이 부조 작업은 매년 아트페어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던 작품이다. 작가는 여기에 환희와 웃음 같은 밝은 면보다 슬픔이나 사색과 같은 감성을 더 잘 보여준다. 익숙한 표정이지만 철망 속에 회화적으로 갇혀 있는 표정에는 신비로운 느낌이 서려 있다.
갤러리 분도 윤규홍 아트디렉터는 "작품은 겨울철의 차가운 금속의 촉각이 시각에도 그대로 전해져 마치 얼음조각이 가지는 몽환적이며 애수에 찬 감성을 우리에게 호소한다"고 말했다.
세계 미술시장과 평단에서 주목받는 작가가 대구에서 선보이는 첫 개인전이다. 2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053)426-5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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