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사만어] 복지 구멍

입력 2012-12-18 07:50:10

'개구멍으로 통량갓을 굴려 낼 놈'이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조그만 개구멍이나 쥐구멍으로 크고 값비싼 통량갓(통량을 단 좋은 갓)이 상하지 않게 굴려 빼낸다는 의미인데 교묘한 수단으로 남을 속이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욕하는 말이다. 재주는 탄복할 만하지만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나쁜 짓을 하다 벌을 받아도 반성은커녕 재수가 없거나 운이 나빠서라고 둘러대는 경우가 많다.

감사원이 최근 복지 사업 실태를 점검한 결과 복지 급여 부정 수급 사례가 가히 개구멍으로 통량갓 굴려 낼 정도다. 전국 52개 시'군'구에서 1억원 이상의 주식을 보유하고도 기초생활보호 수급자로 선정돼 매달 복지 급여를 받는 사람이 무려 80명에 달했다. 딸 재산이 수백억원인데도 버젓이 기초 수급자가 되거나 480만원의 월급을 받는 공무원 배우자를 두고도 차상위 계층으로 선정해 저소득층 자활 급여를 타가는 등 갖가지 부정 사례가 적발됐다.

이처럼 복지 예산이 엉뚱한 데로 줄줄 새고 복지 전달 체계가 엉망인데도 대선 후보들의 복지 공약은 누가 더 많이 주느냐에 온통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어렵게 수조, 수십조원의 복지 예산을 마련한들 누군가 둑을 막고 몰래 물을 빼내 제 배만 불린다면 복지는 공리가 아니라 재앙일 수밖에 없다. 자칫 복지가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한정 없이 부어도 도덕적 해이와 사회 기강을 무너뜨리고 무임승차자만을 양산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사람들에게 늘 '마음의 구멍'을 경계하라고 가르쳤다. '한사잠'(閑邪箴)이라는 글에서 마음의 구멍은 삿됨이 들어오는 구멍인데 삿됨으로 인해 욕망과 사정(私情)이 생겨난다고 했다. 삿됨이라는 개미 구멍 때문에 강둑이 무너지듯 윤리가 무너지고 결국 사람과 세상이 잘못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구멍을 단속하고 잡초의 떡잎부터 제거하지 않으면 도끼질을 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따르는 법이다.

흔히 복지국가는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번영이 합치되도록 이상을 구현하는 국가'로 정의된다. 행복과 번영을 조화시키는 복지에는 분명 돈이 든다. 국가 예산으로 부담하는 이 복지 비용은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이다. 이런 복지 비용을 '주인 없는 공돈'으로 여기고 몰래 빼먹는 부정 수급 사례가 계속된다면 복지는 사회적 덫이자 족쇄가 될 수밖에 없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