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일용직 노동자 장거리 출근 직장인 등 국민의 권리 행사 못해
일용직 노동자 김모(43'대구 달서구 진천동) 씨는 매일 새벽 4시 30분이 되면 집을 나선다. 김 씨가 향하는 곳은 집 근처에 있는 D인력개발 사무소. 김 씨는 "겨울철에는 일거리가 적어 새벽 일찍 나가도 일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김 씨는 대통령 선거날인 19일에도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새벽에 나갈 예정이다. 오후 6시가 넘어야 일이 끝나는 그에게 투표는 꿈도 못 꾼다. 김 씨는 "공사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기 시작한 이후 투표를 해 본 적이 없다"며 "투표보다는 당장 떨어진 쌀이 더 급하다"고 말했다.
헌법으로 보장된 국민의 참정권이 현실에서는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19일 대통령 선거일이 법정 공휴일이 아닌 임시 공휴일인 탓에 선거 당일에도 정상근무를 하는 사업장이 많기 때문이다. 한 푼이 아쉬운 일용직 노동자들은 휴무일에도 일터로 나갈 수밖에 없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노동자는 투표를 위해 필요한 시간을 사업주에게 요구할 수 있다. 이는 아르바이트, 정규직, 비정규직 등 직종에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된다. 노동자의 요구를 거부하는 사업주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또 사업주는 해당 법령을 사업장 내에 게시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과 달리 노동자의 투표권을 지키는 일은 녹록지 않다.
대구 달서구에 위치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이모(24'여'경산) 씨는 19일 대선 당일에도 평소와 다름 없이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한다. 경산에 사는 이 씨가 출퇴근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 1시간. 이 씨가 출근 전이나 퇴근 후에 투표장에 나서는 일은 어렵다. 결국 근무 시간에 따로 시간을 내 투표장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이 씨는 "병원에서 투표권과 관련한 공고문을 보지 못했다"며 "투표시간을 연장하거나 출퇴근 시간에 조금만 여유를 줘도 투표가 가능하다"고 아쉬워했다.
직장인 신모(30'대구 남구 대명동) 씨도 밀린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대선 당일에도 어김없이 출근길에 나서야 한다. 신 씨는 "이번 대선은 관심을 두고 오랫동안 지켜봤기 때문에 꼭 투표권을 행사하고 싶었지만 직장 상사 눈치를 봐야 해 투표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상당수의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에 따른 투표권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노동자 스스로 투표권을 침해한 사업자를 신고해야 하지만 불이익을 당할까 봐 선뜻 신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
실제 대구고용노동청에 따르면 지난 4월 총선 때 투표권 침해로 접수된 진정 사례는 한 건도 없다. 대구고용노동청 관계자는 "다른 업무도 쌓여 있어 선거기간에만 따로 점검계획을 세우진 않는다"며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모든 사업장을 제지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없다"고 했다.
이 때문에 전국 200여 개의 시민단체가 참여한 투표권보장공동행동은 '투표권보장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 단체는 노동자를 대신해 고용노동부에 소속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을 요청하고 사업장으로 근로기준법을 안내하는 공문을 보내고 있다.
14일 현재 신고센터에 접수된 투표권 침해 접수는 80여 건으로, 신고자 대부분 백화점, 택배기사, 대형마트 등에 근무하고 있다. 신고센터에 따르면 신고자 중 상당수가 공문 내용을 직장에서 본 적이 없다는 것. 하지만 단체가 신고된 투표권 침해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을 고용노동부에 요청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근로감독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투표권보장공동행동 관계자는 "지난 4월 총선 때도 신고된 투표권 침해 사업장에 대해 고용노동부에 근로감독을 요구했지만 처벌된 곳은 없었다"고 했다.
투표권 참여 확대를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은 결국 유급휴일, 투표시간 연장이 투표권 침해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투표권보장대구행동에 참여한 대구참여연대 박인규 사무국장은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모든 국민은 직업과 관계없이 투표권을 보장받아야 하지만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 선거 때도 투표장으로 향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정부는 유급휴일과 투표시간을 연장해 노동자들이 투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유급휴일이 적용 안 되는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은 "관급 공사현장만이라도 투표 당일 공사를 하지 않는 방안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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