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두 사람이 동료의 무덤에 화환 하나를 놓고서 묘지의 다른 구역을 지나가다가, 어떤 중국인이 동족의 무덤에 쌀을 조금 놓은 것을 보게 됐다. 미국인 중 한 사람이 물었다. "당신 친구가 언제 와서 그 쌀을 먹을 것 같소?" 그러자 중국인이 대답했다. "당신네 친구가 그 꽃의 향기를 맡으러 올 때이지요."(고정식의 '웃기는 철학' 중에서 '꽃이나 쌀이나')
아름다운 꽃송이를 무덤 앞에 갖다 바치는 우아한 서양인과 쌀알이나 끄집어내어 바치는 꾀죄죄한 동양인이 나란히 있는 풍경. '문화적 상대주의'라는 거창한 이야기를 풀어놓자는 너스레다. 함께 키득키득 거릴 수 있는 까닭인 즉, '너희들은 무덤 앞에 꽃을 놓는 행위나 쌀을 놓는 행위나 실상 다를 것이 없음을 모르는구나! 죽은 사람에게 정말 영혼이란 것이 있는지 없는지 채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예로부터 그런 식으로 죽은 자에 대한 예의를 표시하는 것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인데……. 거기에 무슨 대단한 우열이라도 있다는 듯이 말하는 너희들이 정말 가소롭구나!'라는 일갈의 통쾌함에서 나온 것이리라.
'다르다'와 '틀리다'는 분명 다르다. '다르다'를 다짜고짜 '틀리다'라고 하는 것은 틀리기 일쑤다. 지구촌 시대를 내세우는 요즈음은 잦은 넘나들이로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인정하려는 노력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나하고 다른 것을 단순히 '다르다'고 받아들이기보다는 대뜸 '틀리다'라고 내치는 경향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어 왔단다. 더욱이 오랜 세월 누려온 사회'문화적 동질성을 유구한 긍지로 여겨온 우리들에게는 바깥으로뿐만 아니라 안으로도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다른 의견을 가진 상대방을 대화의 상대로 여기지 않고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대하는 사회. 그런 태도를 솔선수범해(?) 실천하면서 부추기기까지 하는 정치 무대의 현실. 객관적 기준과 권위가 부재하다 보니 다들 자기가 기준이 돼 진보니 보수니, 좌파니 우파니 삿대질하는 데 익숙한 사회. 극좌와 극우가 속성으로는 서로 통하는 불편한 진실 말이다.'(계승범, 칼럼 '다르다를 틀리다라 하는 사회?' 중에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마땅히 있어야 하고, 또 분명히 따져보아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매사 '다름'을 '틀림'으로만 읽어내는 것은 피차간에 피곤하고도 딱한 노릇이다. 때로는 다르다는 것에서 흥미로운 호기심을 느껴보는 여유가 아쉽다. 때때로는 스스로도 틀릴 수가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에 대하여 아예 문을 걸어 닫아버리는 팍팍함이 안타까울 때가 적지 않다.
송광익 늘푸른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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