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른 1918년 10월, 미군은 프랑스 동부의 뫼즈아르곤에서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다. 독일군 기관총 진지로부터 완강한 저항을 받던 미군은 앨빈 C. 요크 상병 등 17명의 분견대를 보내 파괴 작전에 나섰다. 분견대는 대원 절반을 잃고서도 독일 병사들을 포로로 잡으며 방어선을 돌파했지만 격렬한 소총과 기관총 세례를 받아 진퇴양난에 빠졌다.
이때 지휘자로 나선 요크 상병은 동료들에게 포로들을 감시하도록 하고 혼자서 공격을 감행했다. 그가 접근하며 백발백중의 속사로 적 25명을 사살하자 겁에 질린 나머지 독일군들은 항복했다. 그는 미군 진지로 돌아오는 도중 더 많은 독일병을 잡아 포로의 수가 132명에 달했다. 요크의 대담무쌍한 용기는 독일의 힌덴부르크 라인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됐고 독일은 결국 한 달 뒤 항복했다.
1887년 오늘 태어난 요크는 애초에 종교적인 이유로 징집을 꺼렸으나 양심적 병역거부자 자격을 인정받지 못해 전선에 나서게 됐다. 원치 않는 군인이 되었지만 빛나는 활약을 펼쳐 상사로 승진했으며 수많은 훈장을 받았다. 그의 무공담은 1941년에 '요크 상사'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 전쟁 후 테네시주 정부가 준 고향의 농장에서 평화롭게 살다가 1964년에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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