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동 수요장터 상인들
장사를 끝내고 나서 고단한 몸을 이끌고 빈 상자를 모아 고물상에 팔아 번 돈으로 이웃돕기를 하는 상인들이 겨울 한파를 녹이고 있다.
미담(美談)의 주인공은 매주 수요일 대구 달서구 장기동 한 아파트 옆 공터에서 장을 여는 상인들. 이들은 채소, 과일, 생선, 이불, 어묵, 족발, 호떡 등 10여 개 품목을 팔고 있다.
이달 5일 오후 8시 장기 수요 장터. 장이 파하고 나서 지친 몸을 이끌고 이들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천막 뒤에 있는 한 컨테이너다. 채소'과일 등 물건을 담아뒀던 종이상자를 컨테이너에 정리하고 있었다.
장기동 수요 장터 상인들은 지난해 가을부터 파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상인회 김영곤(57) 회장이 장터에서 나오는 파지를 모아 판 돈으로 장기동에 있는 취약계층을 지원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한 것. 30여 명에 이르는 상인들 모두가 흔쾌히 찬성했다.
버려지는 상자를 모아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상인들은 흥이 나서 파지를 보관할 컨테이너도 샀다. 회원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1t 컨테이너 2개를 사서 장터 옆 공터에 세워뒀다. 파지를 보관한 컨테이너가 가득 차면 모은 파지를 고물상에 갖다 준다. 이들은 평일마다 대구와 경산을 오가며 요일 장을 열지만 다른 곳에는 컨테이너를 둘 공간이 없어서 장기동 장에서만 파지를 모으고 있다. 1주일에 한 번 파지를 모으다 보니 1t 컨테이너 2개에 파지가 채워지는 데 2주가 걸린다. 경기가 좋을 때는 물건이 다 팔려 빈 상자가 훨씬 더 많았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 지난해 파지 수집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파지 매입 시세가 ㎏당 200원 정도까지 올라갔다. 덕분에 3개월 정도 모은 돈으로 라면 20상자를 사서 장기동 주민센터에 전달했다. 하지만, 지난주 파지 값은 ㎏당 30원으로 바닥을 치고 있다. 컨테이너 두 대에 파지를 한 가득 싣고 가봐야 손에 쥐는 돈이 6천원인 셈. 적은 돈이지만 상인들은 나눔의 즐거움에 흥이 난다.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이하숙(50'여) 씨는 "상자를 하나하나 해체한 뒤 컨테이너에 쌓아둬야 해서 귀찮을 때도 있지만 조금만 신경 쓰면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기쁘다"고 했다. 상인회 총무 손은준(44) 씨도 "이제 집에서 안 쓰는 고물이나 다 읽은 신문을 가져오거나 컨테이너가 없는 다른 요일 장에서 나온 상자를 자가용에 실어 손수 챙겨와 주는 회원들도 생겨나 파지수집 봉사가 더 활기를 띠는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은 올 한 해 동안 모은 파지를 팔아 번 돈으로 라면 50상자를 마련했다. 이번에도 장기동에 거주하는 취약계층을 위해 동 주민센터에 라면을 기증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회원들과 양로원 등 복지시설을 찾아 손수 만든 자장면을 제공하겠습니다. 작은 노력으로 할 수 있는 뜻깊은 일에 다른 장터 상인들도 동참하면 좋겠습니다."
이지현기자 everyda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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