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검찰 살리기

입력 2012-12-05 11:23:16

스폰서, 벤츠, 뇌물, 성추문, 브로커. 최근 '검사' 앞에 붙는 단어들이다. 국민들에게는 '유아독존'의 존재로 비치기도 하는 검찰이 영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다. 여기서는 검란(檢亂)으로 불리는 일련의 사태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이 몇 있어 살펴보려 한다.

우선 '검찰 문화'라는 표현이다. 특별히 '문화'라는 단어를 썼다. 대통령도 검찰총장도 평검사들도 '검찰 문화'라고 했다. 그러니 문화라고 해두자. 다만 "돈도 받고 차도 받고 더한 것도 받고 그러는 게 범죄지, 어떻게 문화냐? 어디에다 문화를 붙이느냐? 죄의식마저 없어진 것"이라는 비판론이 국민들 사이에 엄존하고 있다는 점은 검찰도 알고 있어야 한다.

'검찰 문화'는 바뀌고 고치고 없애야 하는 대상이 돼버렸다. 이명박 대통령도 스폰서 검사 파문이 일어났을 때 "검찰 내부 문화를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문화'라는 두 글자는 '검찰'이라는 단어와 결합하면 원뜻과 달리 네거티브 일색이 된다.

한상대 검찰총장도 지난해 8월 취임사에서 깨끗한 검찰 문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내부의 적과 싸워야 한다. 가장 큰 적은 오만"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3일 "끊임없는 내부 적과의 전쟁에서 졌다"고 이임사를 했다. 이른바 '검찰 문화' 속에는 오만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는 뜻이다. 오만은 '나 아니면 안 된다'에서 출발해서 '나는, 우리는 이래도 괜찮아'라는 비뚤어진 특권의식과 선민의식으로 불거져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런 탓인지 검사들은 비리 연루 혐의로 조사받을 때 입을 맞춘 것처럼 받았으면서도 '빌렸다'고 주장하고, 주는 이로서는 잘 봐달라는 뜻의 '보험'인데도 받은 검사는 대가성이 아니라 '선의'(善意)라고 우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공짜란 없는데도 유독 검찰 주변에서는 선의와 공짜가 넘쳐난다. 어쨌든 깨끗하지 못하니까 '깨끗한 검찰'을 강조했지 않겠는가. 검찰이 올해 공공기관 청렴도에서 최하 등급을 받은 것은 국민들에게 뉴스도 아니다.

또한 검찰에는 '상명하복'이라는 특수한 조직 문화가 있다고들 한다. 위에서 아래까지 검사는 모두 동일체로 하나라는 말이다. 쉽게 '위에서 까라면 까고, 말라면 마는' 조직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총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검찰 간부들마저 총장을 물러나라고 집단적'조직적으로 압박했고, 그 아래도 다르지 않았다. 밑에서 위를 향해 '물러나라'고 했으니 항명이 아니라 이보다 더한 '하극상' 수준이었다. 이런 일이 밖에서, 혹시라도 군 수뇌부에서 벌어졌으면 쿠데타라고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어떤 분야의 공직사회에서 아랫사람들이 연판장을 돌리듯이 조직의 수장을 나가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조직은 없다. 검찰 말고는. 그만큼 대한민국 검찰은 특별한 존재다.

그런 검찰이 지금은 말이 없다. 검찰을 향한 국민의 시선이 얼음장 같은데도. 평소 같으면 "뼈를 깎는 각오로 새로 태어나겠다"는 그럴듯한 말이 나왔을 타이밍이다. 그러나 지금은 조용하기만 하다. 고개를 들지 못할 만큼 검찰의 처지가 곤궁한 탓이리라.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검찰이 자정 능력을 상실했고, 내부로부터의 개혁도 기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단언한다. 외부의 물리적인 힘만이 무소불위의 권력기관, 검찰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내부의 추진력이 없는 '타율'은 오래갈 수가 없다. 자율의 힘을 찾아내 길러야 지속력을 가진다. 이른바 '검찰 문화'의 변혁이 며칠 하다 말 일은 아니지 않은가. 외부의 힘만으로 뼛속까지의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권력에, 정치에, 비리에 한눈팔지 않으며 사회 정의 실현에 목숨을 건 뜻있는 검사들이 있다. 그들이 움직여야 한다. 1천800여 명이나 되는 전국의 검사들 가운데 그런 기대를 품어도 좋을 인물은 적지 않다. 그들이 있기에 그래도 한국 검찰이 믿을 만하다는 말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끝장토론이든 마라톤회의든 '검찰 살리기' 모임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끝으로 혹시나 해서 하는 이야기다. 누군가 시간이 지나면 검찰을 향한 국민적인 비난의 목소리도 잦아들 것이라는 착각이나 기대를 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된다. 이번만큼은 '저러다 말겠지'의 편이 틀리기를 바랄 뿐이다.

이동관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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