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점자는 늘 생각했다 "왜 물을까+난 알고 싶다"
이번 수능시험이 다소 까다로웠다는 평가 속에서 지난달 28일 성적 발표 결과 대구경북 경우 인문계열에서만 만점자 2명이 나왔다. 대구 대륜고 3학년 이승규 군은 언어'수리'외국어영역뿐 아니라 사회탐구영역의 선택 과목인 윤리, 국사, 사회문화 모두 만점을 받았다. 경북 포항동성고 3학년 서준호 군의 성적도 그에 버금간다. 세 영역에다 사회탐구영역의 윤리와 한국근현대사 과목에서 만점을 기록했다. 두 학생을 만나 수험 생활과 앞으로의 꿈에 대해 들어봤다.
◆대륜고 이승규 군
"후배들에겐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지난달 8일 수능시험이 끝나고 가채점을 한 뒤 승규는 부모와 얼싸안고 기쁨을 만끽했다. 이 정도 결과를 거둔 학생들은 줄곧 우등생의 길을 걸어온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승규는 조금 다른 경우다. 중학교 시절만 해도 승규는 컴퓨터 게임에 정신이 팔린 소년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공부와 멀어졌고 하루 3시간 이상 컴퓨터 앞에 앉아 지내기 일쑤였다.
고교 입학 당시 승규의 성적은 500여 명의 신입생 중 170등 내외에 그쳤다. 3년 뒤 수능 만점자가 되리라고 예상하긴 어려운 성적. 어차피 공부를 해야 한다면 수능 만점을 한 번 맞아 보자고 독하게 마음먹고 책을 들여다본 덕분이다.
"사실 고교 입학 후 컴퓨터 게임을 안 하려 했는데 쉽지 않더군요. 대신 시험이 끝나는 날과 휴일에 가끔식 하는 식으로 게임 시간을 줄여나갔죠. 지난해 수능시험이 치러진 다음날부터는 완전히 손을 뗐어요. 게임을 하는 모습을 봐도 심하게 다그치지 않은 채 믿고 기다려준 부모님이 고마워요."
승규의 공부 방식은 정석처럼 알려진 것들과 다를 바 없다. EBS 교재 위주로 공부하면서 기출 문제 등을 꼼꼼히 챙겼다. 고3 들어서는 이 책 저 책 손대기보다 손에 익은 EBS 교재를 최소한 두 번 이상 학습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노력한 만큼 성적은 매년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렸다. 고3 들어 치른 모의평가 점수는 390점대(원점수 400점 만점 기준)에 이르렀고 내신성적도 1등급 중반대로 올랐다.
"아무리 굳은 결심을 했다 해도 공부가 힘들고 하기 싫을 때가 왜 없었겠습니까. 그럴 때는 제 안에 있는 호기심을 끌어내려고 노력했어요. '알고 싶다' '궁금하다'는 식으로 끊임없이 자기 암시를 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새로운 지식을 익힌 뒤 느끼는 만족감을 알게 되고 그 덕분에 공부에도 탄력이 붙었어요."
수험생 생활 동안 승규의 하루 수면 시간은 6, 7시간. 1, 2학년 때 4, 5시간 잔 적도 있으나 잠이 모자라니 감기에 자주 걸리는 등 몸이 피곤하고 집중력도 떨어져 전략을 바꿨다. 충분히 자되 깨어 있을 때 제대로 공부하자는 것.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친구들과 배드민턴을 치거나 좋아하는 힙합 가수 에픽하이, 슈프림팀의 노래를 들었다.
승규는 수시모집에서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 원서를 썼다. 불합격하더라도 정시모집에서 다시 지원할 생각이다. 대학에서 승규가 공부하고 싶어하는 분야는 심리학이나 인지과학. "인간의 뇌와 마음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고 싶어요. 제가 겪었던 것처럼 사람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포항동성고 서준호 군
"절 챙기느라 고생하신 할머니, 부모님, 선생님들께 감사드려요.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발판을 만들어주셨으니까요."
경북에서 수능 성적 만점을 받은 수험생은 포항 변두리의 한적한 시골 동해면 도구리에서 나왔다. 줄곧 이곳에서 자란 준호가 그 주인공. 준호는 고교 입학 후 전교 1등 자리를 놓친 적이 없다.
포항동성고는 3학년 일반계 학생들이 3개 학급 93명뿐인 작은 고교라 학년이 달라도 대부분 우등생인 준호 얼굴을 안다. 수능 만점을 받은 뒤 준호는 더욱 유명 인사가 됐다. 요즘 후배들은 준호가 지나가면 "형, 대단해요" "오빠, 멋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그때마다 준호는 쑥스러운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준호의 성과는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을 딛고 이뤄낸 것이어서 더욱 빛난다. 준호는 여느 수험생들처럼 부모의 세세한 보살핌을 받기 힘든 처지다. 아버지는 해외 건설 현장, 어머니는 대구의 한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나마 가까이 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도 한 달에 한두 번뿐. 준호는 평소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주말이면 학교 인근에 있는 집에 머물며 할머니와 중학생인 남동생을 챙긴다.
준호는 고교 시절 그 흔한 학원에 가 본 적이 없다. 한적한 마을에서 다닐 만한 학원이 마땅치 않을 뿐 아니라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 더 낫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 기숙사에 머무는 교사, 학생들과 그룹 스터디를 한 정도가 전부다.
"특별한 공부 비법도 없어요. 수업 시간엔 무조건 집중한다는 기본을 지켰을 뿐이에요. 그것이 기억에 오래 남는 방법일 뿐 아니라 선생님에 대한 예의이기도 합니다."
굳이 다른 학생과 다른 학습법을 꼽자면 다들 챙겨보는 EBS 교재를 학습할 때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는 점. '무슨 의도로 이 문제를 냈을까' '지문의 핵심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교재를 파고들었다. 공부할 때 쌓인 스트레스는 친구들과 어울려 농구를 하며 풀었다.
어릴 때부터 다른 나라 문화와 역사에 관심 많았던 준호의 장래희망은 외교관. 고교 입학 후 반기문 UN사무총장이 쓴 책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를 읽은 뒤 그 꿈은 더욱 굳어졌다. 수시모집에서 서울대 정치외교학과에 원서를 냈는데 행여 고배를 마신다 해도 정시모집에서 다시 도전할 생각이다.
"역사는 돌고 돌잖아요.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는데 그로부터 90년 뒤인 1997년 IMF 경제 위기 때 국채보상운동과 유사한 금 모으기 운동이 전개됐으니까요. 더 이상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데 힘이 되고 싶어요."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이철우 "안보·입법·행정 모두 경험한 유일 후보…감동 서사로 기적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