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통이라기엔 너무 아픈 못다 핀 '아홉수'

입력 2012-12-01 08:00:00

젊음발산 뒤로 한채 취업 매달려, 취직 했어도 이번엔 결혼 비용 관문

최근 출판계는
최근 출판계는 '서른'과 '마흔'의 불안과 힘겨움을 씻어주는 메시지를 담은 책들이 화두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빛나는 젊음은 다시 올 수가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네. 우린 언제나 모든 걸 떠난 뒤에야 아는 걸까.'(양희은의 '내 나이 마흔에는')

아프다. 10대, 20대에나 겪던 '성장통'이 아니다. 몸은 더 이상 중력을 거슬러 성장하지 않고, 삶의 무게를 그대로 받아내느라 어깨는 처지고 야윈다. 서른이면 '이립'(而立'스스로 서다)하고, 마흔을 가리켜 '불혹'(不惑'어떤 일에도 흔들림이 없다)이라 한다는데. 상관없는 얘기란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2012년, 서른 즈음에 혹은 마흔 즈음에 서게 된 현대인들이 겪는 서른 앓이 혹은 마흔 앓이의 그늘을 들여다봤다.

◆아직 이룬 게 없는 서른

서른 살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김모(29) 씨. 그는 10개월여 다니던 직장을 최근 그만 둔 '돌아온' 백수다. "대학 졸업 후 2년여 백수 생활 끝에 허겁지겁 한 중소기업에 들어갔죠.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봉급도 만족스럽지 않았고요. '아직 나는 20대인데'라며 용기를 내어 사직서를 냈죠."

하지만 재취업의 벽이 생각보다 높았단다. 졸업생이 배출되는 한 학기(6개월) 차이로 '구식' 등급표를 받는 신규 취업 시장에서 두어 살 어린 후배들과의 경쟁이 녹록치 않았단다. 어쩌다 면접에 붙어도 면접관으로부터 돌아오는 질문이 "그 나이 되도록 뭐했어요?"였단다.

그래서 요즘은 취업을 잠정 포기하고, 아버지가 하는 작은 철물점 일을 돕고 있다. 그렇다고 가게를 물려받을 생각은 아니란다. 아버지도 고된 삶의 대물림을 탐탁지 않게 여기신단다. "직장을 그만둔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20대에 실패와 도전을 거듭하기란 참 힘든 일입니다. 적당히 타협해야죠. 반드시 서른이 되기 전에 말입니다."

젊은이들이 과거 서른 즈음이면 이뤄냈을 취업'결혼 등이 점점 늦어지고 있다. 최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2년 지표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우리나라 25~29세 인구 중 니트족(NEET: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ning'취업 의욕이 없는 젊은이들) 비율은 25.9%로 OECD 32개국 중 8위다. 통계청이 이달 발표한 청년 실업률 6.9%를 훨씬 상회한다.

그러면서 결혼도 늦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평균 초혼 연령은 1990년 남성 27.8세, 여성 24.8세였던 것이 지난해 남성 31.9세, 여성 29.1세로 점점 늦어지고 있다. 20대에 결혼하는 일은 점점 희귀해지고 있다. 여성이 첫 아이를 낳는 초산 평균 연령도 2010년 30.09세로 이미 서른을 넘겼다.

◆제2의 사춘기, 서른은 방황 중

우여곡절 끝에 '운 좋게' 서른 즈음에 취업 등을 이룬 젊은이들은 결혼 등 다음 단계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한다. 1년차 직장인 곽모(29'여) 씨는 "취업만 하면 인생의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결혼 비용 마련 등 산 넘어 산이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님 세대는 소나 논'밭은 팔더라도 큰 빚 없이 학업을 마치고, 작은 살림으로도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삶은 고단했지만 계단을 하나씩 밟아 오르듯 나아갔다"며 "하지만 요즘 세대는 등록금 빚을 갚고, 시댁과 처가에 서로 눈치 보이지 않을 결혼 비용을 마련하는 등 계단이 아닌 큰 산을 하나씩 넘을 각오를 해야 한다. 시쳇말로 '멘붕'이다"고 했다.

실제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 회사가 최근 20, 30대 3만여 명을 대상으로 '결혼 연령이 점점 늦어지는 이유'를 물었더니 가장 많은 9천500여 명(31%)이 '경제적 부담'을 꼽았다.

서른 즈음의 세대에게 불안은 경제적 문제에만 국한될까? 10대, 20대에 끝냈을 심리적 방황을 뒤늦게 하게 된단다.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의 저자 김혜남 박사는 "30대는 심각한 취업난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며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나 안정되지 못한 20대를 보냈다. 외환 위기 사태 이전의 사회 초년생들은 지금 세대보다 덜 풍요로웠지만 지금과 같은 취업난을 경험하지는 않았다"며 "젊음을 발산하고 실질적인 어른이 되는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한 이들이 갑작스레 사회로 던져져 제2의 사춘기를 겪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서른 즈음의 세대에게 조언과 위로의 말을 전하는 책이 최근 쏟아지고 있다. 책 제목을 살펴보니 '서른엔 행복해지기로 했다' '서른에 꽃피다' '서른 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등이다.

◆마흔, 막연히 불안한 '끼인 세대'

마흔 살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직장인 강모(39) 씨. 그는 최근 드라마 '신사의 품격'을 보며 재미보다 씁쓸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장동건 등 주인공이 모두 40대다. 이전에는 20, 30대 재벌2세들이 드라마에서 주류를 이루더니 이제는 '잘난 마흔'이 대세다"며 "나는 아직 20대 티도 못 벗은 것 같은데 곧 40대를 맞이하려니 뒤숭숭하다"고 말했다. 그는 맞벌이를 하는 부인과 함께 유치원생 아들을 키우며 불경기도 호경기도 없는 평범한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앞으로의 40대 인생이 막연하단다. "옛날처럼 '평생직장' 세대인 것도 아니고요. 창업이나 이직 등을 대비해 젊은 후배들처럼 이렇다 할 자기계발을 해 둔 것도 아니고요. 앞으로 100세까지 산다는데 남은 60년이 막연합니다." 앞서 40, 50대 베이비부머 세대의 위기를 바라보니 막연함은 쉽게 불안감으로 변한단다.

현재 30대 후반인 마흔 즈음의 세대는 실제 40대들과 함께 묶여 2차 베이비부머 세대로 불린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태어난 600만 명가량(전체 인구의 12%)이다. 그래서 원조 베이비부머들만큼이나 공통된 고민이 많다. 또한 시대의 굴곡도 함께 지나온 까닭에 불안감은 더욱 깊숙이 공유된다. 부모를 모시고, 자식을 기르기 시작한 일명 '끼인 세대'로서 젊은 시절 외환 위기와 최근 금융 위기의 여파를 겪는 등 큰 고통을 감내한 세대로 여겨지는 것.

고통을 버틴 대가로 돌아온 것은 빨라진 은퇴 시기다. 최근 한 취업포털사이트에서 중소기업 275곳을 대상으로 정년퇴직 연령을 조사했더니 40대인 41~50세에 퇴직하는 비율이 51.5%로 가장 많았다. 평균 정년으로 조사된 55세를 무사히 넘겨 퇴직하는 비율은 33.6%에 그쳤다. 퇴직 사유는 구조조정 및 권고사직이 34.5%에 달했다.

◆'힐링' 필요한 마흔

은퇴를 비롯한 사회적 압박이 심해지는 40대의 처지는 극단적인 지표로도 가늠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과로사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과로사 사망자 1천572명 중 40대가 603명으로 가장 많았다. 또 하나는 자살이다. 통계청의 2010년 발표에 따르면 40대 남성의 사망 원인 2위가 자살(17%)로 심각한 수준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자살 원인 1위는 경제적인 문제(30%)였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에다 사회 전반의 불황까지 겹쳐 심리적 압박이 크지만 마음을 터놓을 대상이 없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청소년, 노인 자살과 달리 40대를 비롯한 중년의 자살은 관심과 예방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모든 40대를 대변하는 얘기는 아니지만 비쳐지는 현실은 이렇다. 까닭에 이들에게 이런저런 메시지를 전하는 책은 서른 즈음의 세대의 경우보다 더 많이 쏟아지며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 '지금 마흔이라면 군주론'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등 '고전 읽기'류부터 '마흔 살의 정리법' '마흔, 인간관계를 돌아봐야 할 시간' 등 '처세술 강의'류는 물론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와 같은 '힐링'류 등 과하다 싶을 정도로 다양하고 많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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