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의 가요 이야기] 가요 황제 남인수(상)

입력 2012-11-29 14:25:51

'애수의 소야곡' 등 유랑·향수·사랑 담은 명곡 남겨

현해탄 초록 물에 밤이 나리면/ 님 잃고 고향 잃고 헤매는 배야/ 서글픈 파도 소래 꿈을 깨우는/ 외로운 수평선에 짙어 가는 밤('눈물의 해협' 1절)

비극적 한일 관계와 한반도의 슬픔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노래였으나 대중들의 반향은 그리 시원치 않았습니다. 시에론을 떠나 오케레코드사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눈물의 해협'에서 가사만 바꾼 '애수의 소야곡'(이부풍 작사'박시춘 작곡)을 발표했습니다. 박시춘이 직접 기타를 치고, 나비넥타이를 맨 남인수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당시 대중들의 가슴을 크게 격동시켰습니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오마는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그 누가 불어주나 휘파람 소리

('애수의 소야곡' 1절)

'애수의 소야곡'은 발표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얻어서 남인수는 곧장 최고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이른바 공전의 대히트였지요. 음반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음반 판매점에서는 가게 앞에 유성기를 내다 놓고 달콤하면서도 애절한 음색으로 불러 넘기는 남인수의 그 노래를 날마다 연속으로 틀고 또 틀었습니다.

매진된 레코드를 구하기 위해 레코드 회사 앞 여관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레코드 상인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당시 언론들은 남인수의 목소리를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미성의 가수 탄생'을 연일 보도하며 남인수의 출현에 대한 감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 음반을 주문하려는 전국의 레코드 소매상들이 서울로 구름같이 몰려들었을 정도였습니다.

이후로 발표한 남인수의 대표곡이 얼마나 많은지 그 정황을 알고 나면 아마 여러분께서는 깜짝 놀라실 것입니다. '서귀포 칠십리' '이별의 부산정거장' '가거라 삼팔선' '고향은 내 사랑' '고향의 그림자' '기다리겠어요' '꼬집힌 풋사랑' '낙화유수' '남매' '남아일생' '눈오는 네온가' '달도 하나 해도 하나' '무너진 사랑탑' '무정열차' '물방아 사랑' '어린 결심' '어머님 안심하소서' '울리는 경부선' '인생선' '청년고향' '청노새 탄식' '청춘고백' '추억의 소야곡' 등.

우선 사례를 떠올려 보더라도 이렇게 스무 곡을 당장에 넘길 만큼 주옥같은 노래들이 있지요. 하나같이 아름다운 절창으로 여러분의 흘러간 시절, 가슴 속에 한과 눈물과 사연도 많았던 그 시절의 추억들이 마치 흑백사진의 실루엣처럼 어렴풋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가수 남인수의 노래가 우리 가슴에 가장 절절하게 사무치도록 다가오는 시간은 우리네 삶이 어딘가에 시달려 심신이 몹시 피로하거나 곤비한 시간입니다. 아니면 고달픈 나그네 길에서 돌아오는 경우라도 잘 어울립니다. 이러한 저녁 시간, 버스나 열차의 붐비는 공간이라면 더욱 좋습니다. 바로 그때 성능이 시원치 않은 스피커에서 뿌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뒤섞여 들려오는 정겹고도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있습니다. 자세히 귀 기울여 들어보면 그것은 틀림없이 남인수의 노래이지요. 이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남인수의 노래는 대개 유랑과 향수, 청춘의 애틋한 사랑과 과거의 회상, 인생의 애달픔 따위를 담고 있습니다.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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