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의 색깔있는 일본이야기] 운동회와 만국기

높은 가을 하늘, 만국기가 바람에 휘날리는 교정. 내 기억에 남아있는 운동회의 풍경이다. 만국기는 운동회의 흥을 돋운다. 얼마 전 두 살 난 우리 집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운동회가 열렸다. 운동회라고는 하나 한두 살짜리 아이들이 매트 위를 아장아장 걷는 모습을 보호자들에게 보여주는 정도이다. 아이들의 뛰는 모습을 보기 위해 교실에 들어가니 천장에 장식된 만국기가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만국기를 보니 운동회의 느낌이 들었다. 보육원 선생님과 원아들이 직접 손으로 만든 국기와 인쇄된 국기가 교차로 연결되어 있었다. 보육원에는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가 세 살이니, 아이들은 의미를 모르고 만국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일종의 그림 그리기로 만국기를 그렸을 것이다. 아마 한국의 태극기는 조금 어려웠겠지만 만족감은 컸을 것이다. 일본 국기는 아이들이 손쉽게 그릴 수 있으나 너무 간단해서 뭔가 부족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육원 아동의 그림 그리기의 소재로 국기가 어울리는지에 대해서는 고민스러운 점도 있다. 일본에서 만국기가 등장한 것은 메이지(明治) 초기 운동회가 시작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만국기는 동서 교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근대라는 시대를 상징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엑스포나 축제 분위기를 살리는 데에도 사용되면서 국민들에게 침투해 갔다. 근대 학교에서 체육과 운동회가 '국민 단련'의 장으로 기능했던 것을 생각하면, 운동장을 장식하는 만국기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경쟁을 상상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국가를 단위로 한 현대 세계에서 스포츠가 순수하게 몸을 움직이는 재미와 즐거움의 개인 수준에 머무르기는 어렵다.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가 경쟁하는 국제경기가 민족주의와 무관하지 못한 것도 같은 의미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인 국기는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진다. 국제대회 시상식에서 국기를 잘못 게양하게 되면 우호의 장이 곧바로 험악한 분위기로 바뀌어 버린다.

최근 만국기가 없는 운동회도 있다고 한다. 학교의 예산 문제도 있겠지만, 다양한 국가 출신의 참가자들을 배려하기 위해서이다. 실제로 만국기는 전 세계 모든 국가의 국기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만국기에는 겨우 20개 나라 정도의 국기가 들어간다. 많은 외국인이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본인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나라의 국기만을 선택하여 만국기를 만들고, '이것이 세계다'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다. 악의가 없더라도 자기 나라의 국기가 없으면, 참가자는 마음이 아플 것이다. 국기의 배열 순서와 위치도 신경이 쓰인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회에서 만국기를 달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만국기 문제뿐만 아니라 최근 운동회는 경쟁과 단련을 강조하는 모습에서 조금씩 변화해가고 있다.

11월에 열린 우리 아이가 다니는 보육원의 운동회는 일본인의 감각으로는 조금 늦었다. 일본에서는 10월 둘째 월요일은 체육의 날로 공휴일이다. 이와 관련하여 운동회는 10월에 열리는 것이 보통이다. 체육의 날은 '스포츠에 친숙하고 건강한 심신을 기른다'는 취지로 제정되었지만, 1964년에 개최된 도쿄올림픽을 기념하는 의미가 있다. 고도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개최된 도쿄올림픽은 국제사회에 선진국 일본을 알리는 국가적 이벤트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우리 아이의 보육원처럼 주최 측과 참가자의 사정으로 행사 시기가 결정되는 경우도 있다. 도시의 초등학교에서는 봄에 운동회를 하는 학교도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가을의 더위와 가을에 집중하는 행사를 분산시키기 위해서이다.

원래 메이지 시대의 운동회가 봄에 개최되었다고는 하나 계절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또 종목도 지나치게 경쟁적인 것이 아니고, 몸을 움직이는 재미를 찾는 데 주안점을 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가끔 운동회에서 제외되는 경향이 있었던 몸이 약한 아이나 체육을 싫어하는 아이도 기분 좋게 참가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살짜리 우리 집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빙 둘러서서 춤을 추고, 장난스럽게 달리기도 했다. 아이의 얼굴에는 싱글벙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미야자키 치호/일본학술진흥회 특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