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무상의료법안과 치매

입력 2012-11-02 11:06:26

딸이 맘먹고 산 구멍 난 청바지를 손바느질로 일일이 꿰매 놓을 정도로 건강한 92세 시어머니가 살짝 치매기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퇴근길 현관문 밖에 벗어놓은 신발을 발견하거나, 점심을 드시고 난 뒤 냄비나 반찬 그릇의 뚜껑을 하나도 맞게 덮어놓지 못했거나 이따금 변을 여기저기 묻혀 놓을 때 특히 그런 생각이 든다.

요양병원을 하는 친구는 이런 상황마다 사진으로 찍어두면 요양 등급 심사 시 판정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지만 백수를 넘어 사시리라 믿기에 '시어머니의 현장(?)'을 담는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결혼 이후 30년을 함께 산 시어머니는 '내조의 여왕'처럼 낮에는 혼자 아파트를 지키며 집안 뒷정리하고 빨래도 개고, 자투리 시간에는 텃밭에서 고추 토마토를 따올 정도로 건강하다.

전 국민 가운데 54만 명이 치매를 앓고 있는데도 고령의 시어머니가 정상인의 90% 이상 되는 몸과 마음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내게 행복한 일이다. 올해만 5천800여 건에 달하는 치매 환자 실종 신고도, 끝내 물거품이 되어버린 '대구 치매 어머니 찾기' 같은 애타는 자식의 입장도 되지 않은 것은 순전히 건강한 시어머니 덕분이다.

이제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은 치매에 대한 지원 방안을 본격적으로 거론할 때가 됐다. 대부분 가족에게 맡겨져 있는 치매 환자의 실종 건수는 2009년 5천659건, 2010년 6천566건, 2011년 7천607건으로 급증했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경제난 등을 이유로 가족으로부터 버려지고 있다.

대선을 40여 일 앞두고 민주통합당 김용익 의원이 1일 '비급여 진료 전면 급여화' '본인 부담 100만 원 상한제' '민간 병상 명예퇴출제' 등을 골자로 한 무상의료를 실현하기 위해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 '의료법 개정안'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빠르면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된다.

이미 OECD 국가 대부분은 무상의료제도 또는 그에 가까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보다 소득이 낮은 대만도 연간 160만 원이 본인 부담 상한액이고, 태국은 '30바트(약 1천85원) 의료보장제도'를 2002년부터 시행하여 서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전면적인 무상의료법이 재정 부담으로 작용한다면 치매 등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는 특정 질환부터 적용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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