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행복편지] 폼생폼사

입력 2012-10-30 07:43:24

여름 한동안 하얀 모시옷을 즐겨 입었습니다. 무더위를 좀 피하려는 생각이었지요. 한 번은 강의실 문을 들어서자 몇 분의 수강생들이 연거푸 플래시를 터트렸습니다. 그림(?)이 좋다며 스마트폰으로 담아 둔다니 굳이 손사래 칠 일은 아니었습니다. 표현이 재빠른 어느 여성 수강생이 "교수님, 멋있어요. 예술입니다" 라고 하니 난들 어찌 추임새가 없으리오.

"폼생폼사(form生 form死)라…."

아마도 멋이란 우선 보이는 데서 시작하는가 봅니다. 인간의 눈은 외적인 형식(form)에 먼저 지배되니까요. 나는 그날 에세이의 형식미에 관한 이야기로 강의를 이어나갔습니다. 흔히들 수필은 형식을 넘어선 자유롭게 쓰는 문학 장르라 하지만 사실은 그 내면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형식이 도사리고 있다는 내용의 강좌였습니다.

대칭과 비율, 조화와 질서, 균형감 같은 형식미가 예술을 지배한다는 논리는 어제 오늘 논의된 것이 아닙니다. 고대 미학자들은 자연을 모방하는 기술(mimesis)로서 예술을 강조했던 나머지 그 미론의 근거를 형식에서 찾았고 그러한 인식은 근대미학이 발달되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어 왔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그날 저녁 수강생들은 나를 두고 멋있다고 하였을까요. 빳빳한 종이처럼 풀을 먹이고 다림질한 모시옷의 맵시 때문일까요. 아니면 내 머리색이 은발이어서 그랬던 것일까요. 단순히 하나의 외형이 아니라 적어도 그 두 가지 외적 모양이 서로 조화롭게 보였다거나, 강의실 안에 전시된 물 항아리나 몇 점의 유화를 비롯한 주변상황과 나의 차림새가 어떠한 유형의 질서를 이룸으로써 아름답게 여겨진 것일 테지요.

우리들의 일상은 멋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늘과 산과 들, 대자연은 시시때때로 그 요소들 간의 질서 있는 변화와 조화로움으로 우리들에게 크나큰 감동을 던져 줍니다. 하늘을 쳐다보세요. 쪽빛 공간으로 흐르는 하얗고 엷은 구름이 가을날의 청량감을 더해줍니다. 익어가는 들판 위로 활짝 깃을 펼치고 나는 새들은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그리게 합니다. 밤마다 그칠 줄 모르는 풀벌레들의 우짖는 소리에 귀 기울이노라면 여물어가는 자연의 율려(律呂)가 거기서 비롯되는가 싶어집니다. 또한 생기발랄하고 풋풋한 학생들의 몸짓, 자기 일에 열중하여 땀에 흠뻑 젖은 젊은이들의 표정들…. 그 모든 삶이 곧 멋이고 아름다움이지요. 단 하나의 존재도 필요치 않은 것이 없는 우주의 구성요소들은 서로 맞물려 일정한 질서와 형식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체감하는 우리는 때로 아름답다고 표현하고 더러는 멋있다는 말도 서슴없이 하게 되는 것이지요.

형식은 내용을 담아내는 소중한 그릇이고 틀입니다. 때로는 파격이라 하여 그 형식미를 과감하게 파괴하는 것이 또한 아름다움이기도 하지만 보편적 미를 추구하는 우리는 결코 그 형식을 외면하지 못합니다. 진실로 아름다운 형식은 내용(실질)과 분리될 수 없는 일원적인 존재라 할 수 있지요. 논어에서도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형식과 내용의 균형감, 문질빈빈(文質彬彬'외양과 실질이 서로 잘 갖추어져 조화됨)에 두고 있습니다. 형식으로서 문이 내용인 본질을 앞서면 개성을 상실한 복사된 것에 불과하게 되고, 질이 문을 넘어서면 거칠고 조악한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시적이고 감각적인 가치를 우선시하는 우리들은 지나치게 형식에 얽매여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 미의 세계뿐이던가요. 사회적으로 보면 문화로 포장한 갖가지 공공 프로그램들이나 실제를 가장하고 형식만을 좇는 무책임한 지식인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들은 겉을 분칠하여 그럴듯하게 그리지만 내실과는 이격된 다른 모습의 아름다움이라 그것은 쉬 사그라지고야 맙니다.

사람은 저마다 각기 다른 모양을 드러내고 살기 마련입니다. 실제보다는 형식을 중시하는 사람, 혹은 형식은 무시한 채 본질만을 전부로 생각하는 사람, 또는 모양을 삼단 같게 갖추되 늘 본질을 잊지 않으려는 유형도 있지요. 나도 분명 그 어느 한편에 치우쳐 있겠지만 안과 밖이 어우러진 진정한 아름다움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곤 합니다. 형식에 걸맞은 튼실한 내용을 꽉 채우고 있어 스스로 '폼으로 살고 폼으로 죽는다'고 말하고 책임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김정식/담나누미스토리텔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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