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에타(Pieta)를 보는 내내 불편함에 힘이 들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살인과 강간, 그리고 무자비한 폭력을 통해 자본주의의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준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강자가 약자를 수탈하는 야만의 세상을 넘어 근친상간이라는 윤리적 파탄에 이르는 장면은 그야말로 참기 힘들었다. 그는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세상의 '잡놈'들에게 '너 자신을 믿어라'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잡놈들이 보는 세상이 굉장히 정확할 거다"라는 그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어쩌면 그것 조차도 세상의 일부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영화가 잔인하다고 평가받는 것에 대해 현실이 더 가혹하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영화는 자학과 가학, 그리고 피학으로 점철되어 있다.
원래 피에타는 죽은 예수의 몸을 떠받치고 비탄에 잠긴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묘사한 기독교 미술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로 이탈리아 성 베드로 대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Vatican)에 있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피에타가 가장 유명하다. 아마도 김기덕 감독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자신의 아들, 예수를 끌어안고 있는 마리아에게서 인간의 비통함을 먼저 보았는지 모른다. 피에타를 통해 신이 아닌 인간을 읽어낸 그의 시선을 높이 평가한 영화제가 황금사자상을 주었겠지만 무지한 관객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오래된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그것은 섬집아기라는 영화에 삽입된 음악과 관련한 기억이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갈매기 울음 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엄마는 모랫길을 달려 옵니다(섬집아기 가사 전문)
초등학교 4학년, 담임선생님은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부반장이던 소년에게 관리를 맡겼다. 며칠 동안 걷은 동전들을 다른 날처럼 선생님 책상 안에 두고 하교를 한 다음 날, 소년은 그 돈이 없어진 사실을 알았다. 선생님은 아이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며칠 동안 수업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업 대신 아이들에게 자백을 강요했지만 아무도 자백하는 아이는 없었다. 결국 선생님은 눈물을 흘리며 선생님을 그만두겠다고 말씀하셨다. 소년은 손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 돈을 가져갔노라고 거짓 자백을 하고 말았다. 무릎을 꿇고 앉아있던 친구들의 고통과 선생님의 눈물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선생님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다. 그리고 그 학교에서 지역 초등학교가 참가하는 합창대회가 열렸다. 아이들을 반갑게 안아주시는 선생님을 향해 소년도 달려가 인사를 했지만 선생님은 외면을 하셨다. 소년은 합창대회 내내 눈물을 흘렸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선생님의 눈물이 아파서, 아이들이 고통받는 것이 싫어서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선생님은 싸늘하게 돌아서 있었다. 그날 우리가 부른 노래는 섬집아기였다. 합창을 지휘했던 다른 선생님은 소년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결국 합창대회는 소년의 눈물 때문에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하고 끝이 나고 말았다.
언젠가 나이가 들어 선생님을 다시 만난다면 진실을 말하겠다는 소년의 희망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이 노래를 듣지도 부르지도 않았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노래가 담긴 음반을 사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어린 날,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그날의 진실이 스피커에서 흘러 나왔다. 그리고 가파른 언덕길 위에 있었던 초등학교, 꽃들을 돌보는 아이들의 이름을 붙인 작은 화단들과 긴 시간을 기다려 동무들과 물을 긷던 약수터, 그곳에서 내려다보던 붉은 색을 칠한 등대와 날카로운 바위뿐인 바닷가가 떠올랐다. 소금기 섞인 바람에 무너지던 코스모스도, 오랜 시간 울음을 내며 전기줄에 매달려 있던 연도 이제 과거의 기억 속으로 떠났다. 그날, 손을 들어 말한 소년의 거짓 고백은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과거 속에서 섬소년은 자라 잠들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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